요 한해를 빼고 거의 70년 동안 나는 위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는 말고 서울 와 살면서부터만 돌이켜봐도 배앓이, 게우기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살던 집 차고 눅눅한 방에서 배를 웅크려 안고 뺑뺑 돌던 기억이, 이따금 마치 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풀이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여러 가지 위 증상에 시달렸는데 이렇다 할 치료를 하지 않고 견뎠다. 왜 그런지 생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늦깎이 한의사가 된 다음에는 더러 한약을 달여 먹곤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깊이 관심 두지 않았다.

 

70줄에 접어든 어느 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벼락같은 사실과 맞닥뜨린다: 생후 1년 이내 영아에게는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가 분비되지 않는다! 이 시기 동안은 모유를 먹도록 진화해 왔다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내가 먹은 음식은 모유가 아니라 미음이었다. 어머니한테서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먹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 누구이랴. 당사자인 아기가 자라서 의료인이 된 뒤에도 20년 가까이 몰랐던 사실을 바탕으로 뭔가 알아차리기란 벼락 맞고 천재 되는 일과 같다.


 

인간이 모른다고 아무도 모르리라 단정하면 안 된다. 아는 존재들이 그때부터 있었으며, 이제까지 있다: 바로 인간 나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그들이 증거 주체며, 나아가 나를 어렵사리 살려낸 은총 주체다. 그들이 마침내 꼭 똑 알맞은 카이로스를 택해 내게 기별했다. 한 소식 전해 들은 나는 그제야 70년간 봉인돼 있던 비밀에서 풀려났다(解脫). 깨달음은 곧장 치유력으로 작동했다. 사실에 터 잡은 진실 서사가 장엄한 의학이 되어 내 생애 전체를 화쟁으로 관통했다. 70년 통틀어 속이 이리 안온한 나날은 바이없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는 중이다.

 

내력도 이치도 시종도 모르는고통에 시달릴 때 인간은 절망한다. 모르는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의학이다. 이 행위를 하는 의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 구조 병을 수리하는 외과 기사, 기능 병을 개선하는 내과 기사만 판을 친다. 삶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병을 서사로 치료하는 고갱이 의학을 내다 버린 거다. 서사로써 모르는상태를 걷어내는 시간이 제국 자본에 반역하기 때문이다. “모르는상태이기에 무거워지는 고통이 기사질로 가벼워지는 고통보다 모름지기 더 많다. 의자가 본디 알려주는 자였다는 역사를 신화에 내어주면 찐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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