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여니 지난밤 대학 동기 하나가 보낸 카톡 알림이 뜬다. 별로 친하지 않아서 그동안 카톡은커녕 전화 한 통 주고받은 일이 없던 터라 갸우뚱한 채 보니 아뿔싸 전한길 유튜브다. 350만 뷰라며 보라고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 쌍욕 하나 날리고 지워버린다.

 

이놈은 판사 출신 변호사다. 국비로 미국 유학까지 한 엘리트다. 그런 놈이 전한길 유튜브에 빠져 전도씩이나 하고 자빠진 거다. 하기는 전광훈 집회에 60대 이상 엘리트들이 득실거린다니 뭐···. 엘리트란 공부잘해 다른 쪽은 계발되지 못한 꼴통을 가리키는 말이지 싶다.

 

사실은 나도 검사가 되려고 사법고시를 본 적이 있다. 일차 합격해서 두 번 이차를 본 뒤 나는 단호히 발길을 거둬들였다. 달달 외워서 쓰는 공부가 너무 싫어서다. 나는 시험용 암기 공부에 적합하지 않고 학문용 사색 공부에 적합한 머리를 지녔다고 한 어느 선배 말이 정확했다.

 

그 선배는 내가 민주적 기본 질서를 논하라라는 문제를 놓고 일주일 동안 고민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시 공부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몇 가지 충고를 해주었다. 그때는 반신반의했으나 이차 시험 보고 나선 확연하게 내 본성을 깨달았다. 나는 인생을 고민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 돌아섬은 패배였다. 나 말고 모두 반대했다. 그러나 수십 년 뒤 내 동기서껀 친했던 선후배 가운데 판검사가 된 면면을 보고서 실패가 축복이었음을 알게 됐다. 세상 이치 전혀 모른 채 시험으로 현자사도가 된 엘리트들이 무지와 편향에 절어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시상 이치란 심오하고 복잡한 무엇이 아니라, A가 진리일 때 똑같은 값으로 진리인 non A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부단히 펼쳐지는 비대칭 대칭 사건이 세계 진실이라는 이야기다. 일극 집중 형식논리에 빠져 저만 옳다고 맹신하는 엘리트 머리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

 

전한길 유튜브 보낸 엘리트 놈과 달리 내가 세상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저 패배에서 나왔다. 패배를 거듭하며 세상 이치를 더욱 섬세하게 더욱 치밀하게 깨달아갔다. 그 깨달음이 빚어낸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는 패자 필생 진리다. 이 진리는 현재진행형 미완 서사다.

 

완성 없는 승리 서사를 한 자 한 자 써가는 사이 없으나 있고야 마는 패자 언어에 마음 기울인다; 있으나 없어지고야 마는 승자 개소리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저들이 엄숙 떨 때 우리는 그저 그냥 논다. 웃으며 춤추며 손뼉 치며 응원봉 흔들며 우리는 엘리트를 딜리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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