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숙소 가까운 오름을 확인한 터라 그리 갈 요량으로 식사를 마친 뒤 천천히 걸었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면서 가다가 느닷없이 눈에 들어온 “큰넓궤”에 관심이 와락 쏠린다. 무작정 그리 발길을 돌린다. 가는 길 풍경이 절경 아니어서 멋지다. 묵은 땅 사초류 ‘잡초’가 바람 따라 빚어내는 물결과 그 소리가 도리어 고즈넉함에 깃들게 한다. 주위 낭·풀을 살피며 이름을 불러주며 사진에 담으며 가다 보니 4·3길과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가 있다.
멀리 뵈던 도너리오름이 갑자기 가까이 보인다 싶은 어느 순간, 큰넓궤를 알리는 조형물이 먼저 들이닥친다. 처음엔 거기를 지나 더 들어가야 큰 굴이 있나 했다. 훼손 우려 때문에 쇠막대기 구조물로 막아 놓은 작디작은 굴이 큰넓궤임을 이내 알아차렸다. 어찌 저리도 좁은 곳으로 사람이 드나들었을까 싶지만, 이치로 따지면 그래야 안전하다. 근처 “도엣궤”까지 확인하고 나오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날카로운 옛 질문이 새삼 폐부를 찌른다. 여기 숨어 살다가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끝내 토벌대에게 대부분 살해되고 말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가 만나는 큰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조금 가니 4·3유적지가 또 있다. 잃어버린 마을 “삼밭구석”이다. 사실은 여기 주민이 큰넓궤에 숨어 살았고, 토벌대는 마을을 불 질러 초토로 만들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나중에도 마을을 재건하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살았기에 마을은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표지가 서로 혼란을 주어 마을 터가 정확히 어딘지 알 수 없게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을 흔적을 지우고 시침 뚝 뗀 풍경 자체가 쓸쓸함이다. 길 잃은 채 올라가다가 축사에서 풍겨 나오는 심한 악취를 견디지 못해 돌아섰다. 지금도 그 냄새가 온몸을 휩싸는 듯하다. 이념과 돈에 눈먼 인간 악취와는 비교조차 안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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