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자 부처님오신날인 5월 8일, 나는 서울 둘레길 제3(일자산-고덕산)구간을 걸었다. 수서역에서 서하남IC 입구 교차로까지 시가지 부분을 제외했다. 고덕산에서 광나루역까지 시가지도 있지만, 한강을 도보로 건너기 위해 포함했다. 그렇게 20km를 7시간-점심 식사와 버섯 사진을 위해 들인 시간을 제외하면 5시간가량-에 걸쳐 걸었다. 이제 서울 둘레길 걷기가 마무리되었다. 한양 도성길, 북한산 둘레길, 관악산 둘레길에 이어 서울 둘레길까지 걸음으로써 서울 숲들에 대한 예의 대강을 표한 셈이다. 서울 산 지 58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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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3구간을 아예 빼려고 생각했다. 지도를 면밀하게 살피고 나서야 만만치 않은 숲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자산은 134m고, 고덕산은 86m 남짓이니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숲은 언제나 예상 밖 풍경을 지니고 있다. 일자산 초입부터 버섯들이 나를 열렬히 맞아주었다. 능선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하남시 쪽으로 완만한 경사에 묘지들이 가득하다. 놀랍게도 그 묘지 사이사이가 죄다 텃밭으로 꾸며져 있었다. 텃밭에 묘를 썼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이상하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묘한 풍경이었다. 알 수 없는 평안함에 환희를 더해준 존재는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잡은 막걸리집이었다. 아까시꽃 향기가 자욱한 숲속, 나는 가져간 구운 감자를 빈-양념을 제거한- 김치에 싸서 점심으로 먹으며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였다. 그 많은 둘레길 걷기 마지막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숲과 곰팡이가 내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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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산은 낮디낮은 그야말로 야산이다. 이름조차 없었으나 조선을 받아들이지 않고 칩거한 어느 고려 선비 높은 덕을 기려 이름을 붙였다 하니 산이 갑자기 야젓해 보인다. 지금이야 우습게 들리지만 6백 년도 훨씬 전이라면 여기는 은둔지로서 손색없다. 매봉(85m) 자락을 거둠으로써 고덕산은 한강에게 길을 내어준다. 둘레길 아니었다면 아무도 걷지 않았을 섶 길을 지나 한강 둔치로 나섰다. 미루나무가 줄지어 있어 어린 시절 떠나온 강원도 평창 신작로를 떠올리게 한다. 드디어 한강이다. 걸어서 한강을 건너기는 참 오랜만이다. 20대 초반 한남동 강 건너편 배밭(압구정동)에 배 먹으러 간다며 ‘제3한강교’를 건넌 이후 처음이지 싶다. 광진교 위에서 흐르는 강물, 서쪽 하늘 아래 펼쳐진 도시, 그리고 그 너머 관악산을 무심히 본다. 숲에서 숲으로 이어온 여러 둘레길 여정을 강에서 끝낸다. 인생 또한, 이와 같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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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ritual을 멈출 수는 없다. 다시 어딘가 숲으로 가야 할 테다. 어찌할까? 아무 생각이 아직은 없다. 서두를 까닭도 없다. 이 여정에서 내 인생 마지막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곡진한 헌정과 걸판진 놀이가 맞물리도록 풍경을 그려내야 하겠지. 그러려면 내 영혼의 감각이 더 섬밀해져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숲도 더 깊어져야 할까? 산이 높다고 숲이 깊지는 않다. 명산보다 뒷산이라는데, 멀리 있는 명산에 괜한 욕심 들일 일은 없겠다. 어떤 지관이 일자산 와 살피더니 ‘낮아도 이 산은 약산이다.’라고 했다던 막걸리집 주인 말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