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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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입으로 하는 말과 신체가 발신하는 메시지가 다른 경우를 종종 마주합니다. 그때 어느 쪽을 신뢰할까.......대부분 사람은 말을 좇아갑니다.(89~90)

 

이중구속을 언급한 <2. 작아서 높다>에서 미세한 징후가 지닌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 미세한 징후가 바로 여기 신체가 발신하는 메시지다. 신체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왜 미세, 또는 미세하다 할까? 이 또한 비대칭대칭이다: ‘말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소통해온 인습이 신체 메시지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문명·사회적 근거와 말은 중추신경 영역이므로 macro하고, 신체 메시지는 말에 직접 수반되는 변화를 제외하면 모두 자율신경과 장신경 영역이므로 micro하다.’라는 자연·생리적 근거 사이.


남성, 자아, 이성, 형식논리가 지배해온 인류 역사는 곧 말이 지배해온 역사다. 말이 거대하고 강력한 이유는 통치 집단이 말을 그런 도구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문자를 전유하고 의미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도 본질은 불변이다. 이런 광풍에서 비껴난 소수 민족, 예컨대 북미대륙 선주민은 신체 메시지를 미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중추신경은 human-biont인간이 통어하므로 직접 지각이 쉽다. 자율신경과 장신경은 인간이 통어하지 못하고, 특히 장신경은 micro-biont인 곰팡이나 박테리아, 심지어 바이러스가 통어하므로 직접 지각이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심장 박동 정도는 훈련된 사람이 맥을 짚어야 어느 정도 다양한 신호를 감지하고, 나머지 경우는 크게 병들지 않으면 대개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장구한 시간 동안 우리 무지로 방치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유념하고 극진히 두드려야 할 문이 아닐까.

 

입에서는 행복하다는 말이 흘러나오는데 신체가 숲으로 들어가 흙을 가만가만 만지고 있을 때, 거기서 우울증 읽어내는 감각이라면 연마하지 않아도 지녀야 할 시기가 박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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