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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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수줍음 타는 아이를 자기표현 잘 하고 자기결정 할 수 있고, 자기의견 척척 말할 줄 아는 아이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자기의견을 말하세요. 자기가 좋아하는 바를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세요. 자유와 권리를 찾으세요.”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자기정체성, 자유, 욕망 따위는 모두 뇌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뇌는 어딘가에서 남 이야기를 가져와 다만 출력할 뿐입니다.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보라 하면 지겨울 정도로 틀에 박힌 이야기만 합니다.......본인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자유를 구사하는 방식이 무서울 정도로 똑같습니다.......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거나 머뭇거림은 신체가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체가 뇌 폭주를 저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86~87)


 

흔히 성격처럼 인식되지만 수줍음은 사회 감응이다. 경험에서 나왔다면 더욱 그렇다. 남 앞에서 말이나 행동하는 일은 물론, 남과 마주하는 일 자체를 어려워하는 일은 바탕에 사회 공포·불안을 깔고 있다. 사회 공포·불안은 사회가 본성상 Anon-A 비대칭대칭이 전방위·전천후로 뒤엉키는 현장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불가피한 공포·불안을 불가결한 삶의 요소로 받아들이고 가꾸면서 살아야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인간다울 때 비로소 풍요가 선물로 찾아든다. 풍요로운 인간은 지겨울 정도로 틀에 박힌 이야기, 무서울 정도로 똑같은 방식으로 구사하는 자유, 어딘가에서 남 이야기를 가져와 다만 출력할 뿐인 뇌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뇌가 폭주하려 할 때, 신체를 활발히 작동시켜 저지한다. 신체가 활발히 작동하면 Anon-A 비대칭대칭이 전방위·전천후로 뒤엉키게 된다. 뒤엉킴이 일으키는 complex system networking에서는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거나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뇌 독재를 불허하기 때문이다.

 

뇌 독재를 불허해서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거나 머뭇거리는 감응을 수줍음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현재로는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수줍음이라는 말 자체 좋은 어감과 달리 미덕으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사라져버렸다. 왜곡 오염된 수줍음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고 몸이 배배 꼬이는 계집아이를 연상시키는 경계 안에 갇혀 있다.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지 않고, 수줍음으로써 이 경계를 넘어가려면 정의를 바꿔야 한다. 정의를 바꾸는 일은 사전 문제가 아니다. 언어공동체 공유 인식 문제다. 공유 인식은 공유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공유 경험은 뇌 독재를 벗어나 신체감성을 회복하는 사건이다. complex system networking이 일으키는 생명 연방 민주주의 사건을 겪으면 수줍음은 자연스럽게 미덕을 되찾으리라. 수줍음 미덕은 아름다운 인간학이지만 그 길은 낭·풀로 돌꽃으로 말로 곰팡이로 뻗어 있다. 섬세하고 강인하게 그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수줍음 신성으로 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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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18: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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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8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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