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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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도에 추수推手라는 훈련법이 있습니다. 서로 손을 맞대고 을 보내기도 하고, 받아넘기기도 하는 수련법입니다. 무술에서는 힘을 표현할 때, ‘을 구분합니다. 역은 신체적인 힘, 근육이나 골격에서 나오는 힘으로, 우리는 그 힘을 써서 무엇을 치거나 잡거나 합니다. 경은 다릅니다. 경은 미세한 진동 같아서 상대방 신체 속으로 스며듭니다.(66)

 

경도 일종의 타격이어서 정면으로 맞으면 휙 날아갑니다. 미세하게 쪼개 부드럽게 들음聽勁으로써 자신이 입는 상해를 거의 없는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경을 내보낼 때는 반대로 60조 개 세포로 분산됐던 힘을 한 점으로 모아 상대방 신체에 똑바로 보냅니다. 들을 때는 ‘1/60로 바꾸고, 내보낼 때는 다시 ‘1’로 되돌린 다는 말입니다. 자기 신체를 한없이 미세하게 쪼개고 다시 포개 하나로 되돌리는 일, 즉 분해와 통합을 반복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아주 기분 좋은 일입니다.(67)

 

아주 기분 좋은 일은 타격인 경을 1로 내보내 상대를 휙 날아가게 해 승리할 때만이 아니라, 1/60조로 받아 상해를 거의 받지 않고 패배할 때도 일어난다. 이 좋은 기분은 40년 동안 합기도 수련을 해온 우치다 타츠루 정도나 돼야 감지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평범한 사람은 꿈에서도 잘 느끼지 못한다. 경은 파동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이고 역은 입자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이해야 조금 더 잘 되겠지만, 경을 현실화해서 전달하는 일은 오히려 더 아득해진다. 미세한 진동 같아서 상대방 신체 속으로 스며드는 힘이 상대방 신체를 휙 날아가게 한다는 말에 신경 쓰면 감각은 마비무인지경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아주 기분 좋기는 일사 글렀다. 무도 고수로서 사람과 대련하거나 싸울 수 없는 내게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나는 질병, 정확히는 질병에 걸린 신체와 정신을 마주하는데 거기에 다른경을 보낼 수 있다면, ‘다른식으로 아주 기분 좋은 일을 일으키리라. 우선, 침 이야기부터


침은 본성상 역이 아니고 경이다. 극미한 침습으로 커다란 치료 네트워킹을 유발한다. 물론 쪼개고 포개는 데 따라 전혀 다른 방식과 방향으로 신체 속으로 스며든다. 아픈 사람이 누운 상태에서 피부 표층에만 극히 약한 자극을 주면 효과는 국소적으로 나타나며 몸을 이완시키는 부교감신경 활성을 높여준다. 쪼개는 방식이다. 아픈 사람이 앉은 상태에서 근육으로까지 깊이 강한 자극을 주면 효과는 전신적으로 나타나며 몸을 긴장시키는 교감신경 활성을 높여준다. 포개는 방식이다. 모호한 또는 착종된 질병도 존재한다.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쪼개는 방식을 앞에, 포개는 방식을 뒤에 배치한다. 거꾸로는 안 된다. 자율신경과 관련한 부분만 언급한 이 현대 과학적 설명에 앞서 장구한 세월 동안 존재해온 경락 이야기가 있다. 경락은 신경, 혈액, 림프로 나뉘어 진화하기 이전 통신체계를 담은 조상 실재로 당연히 후손과 기본적인 본성 일치를 이룬다. 이런 이치를 섬세하게 따르면서 아픈 사람과 더불어 가는 일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이번에는 한약 이야기. 근본적으로 역일 수밖에 없는 인공 화학합성물질 양약과 대비해보면 한약 역시 기본적으로 경이다. 한약이 작동하는 원리 전반이 침과 같음은 자연스럽다.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닌 독을 극미량 이용함으로써 커다란 치료 네트워킹을 유발한다. 이는 한약이 동종의학 이치를 따른다는 말이다. 동종의학 이치는 본성상 파동(공명)이며 소식(소통)이다. 이런 이치를 섬세하게 따르면서 아픈 사람과 더불어 가는 일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마지막은 당연히 숙의(상담) 이야기. 한의사지만 숙의치유자인 내게는 이 이야기보다 귀한 다른 무엇은 있을 수 없다. 서구 상담은 숙의가 아니다. 그 본성은 역이며 기축은 일극집중이다. 일극집중 입자의 역에서 숙의는 존재 배반이다. 그 상담자가 아픈 사람 말을 듣는 이유는 자기 말을 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숙의자로서 내가 말하는 이유는 아픈 사람 말을 듣기 위해서다. 듣기 위해 하는 말은 역일 수 없다. 1인 경일 수도 없다. 1/60조인 경이다. 사람도 병도 한 방에 휙 날아가게 하면 안 된다. 마음병은 이야기며 역사기 때문에 한 방에 휙 날아갈 수 없는 본성을 지닌다. 내게 아픈 사람이 하는 말은 무엇인가. 대개 역이다. 많은 경우 1인 경이다. 나는 상해를 입는다. 상해 입을 각오를 하고 이 일을 한다. 상해를 견뎌내며 아픈 사람 말을 역에서 경으로, 1 경에서 1/60조 경으로 바꿔낸다. 숙의는 공생 길을 찾아가는 복잡한사람들이 벌이는 놀이며 제의다. 이런 이치를 섬세하게 따르면서 아픈 사람과 더불어 가는 일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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