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외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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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직 우리가 행동하도록 감화될 때만 행동한다. 아울러 우리는 바깥에서, 다른 곳에서, 남의 삶에서 비롯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 곧 결국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 어떤 넘치는 감정을 야기하는 무언가에 감화된다.(151~152)


 

생명 네트워킹 창발emergence은 타자가 건넨 한 소식을 감각함으로써 움튼다. 감각은 언제나 생사 갈림길을 제시한다. 감응response하면 살고, 반응reaction하면 죽는다. 감응은 고립자아 경계를 지우면서 들어와 감수感受sensibility을 연다. 감성 또는 감수성이라 불리는 이 파동은 기존 주파수를 교란해 변화시킨다[“감화”]. 감화는 넘치는 감정으로 꽃핀다. 넘치는 감정은 행동으로 결실한다. 행동이 새로운 인간과 인생과 세계를 드러내준다.

 

감각부터 행동까지 과정을 초군초군 톺아본 까닭은 감각, 감응, 감수, 감화, 감정, 행동이 이루는 서로 다른 결을 각각 살펴 좀 더 세밀한 역동에 이르기 위해서다. 이런 실사구시 자세는 내가 마음치유 임상의이기 때문에 나왔다. 내게 절실하다면 환자에게도 절실하다. 환자에게 절실하다면 환자 그득 품은 이 공동체에게도 절실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안다면 한결 정확하고 옹글게 접근할 수 있다. 결절점마다 고유한 이야기를 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데 무엇보다 홀대당한 생명사건이 바로 감각이다. 자기 경계 최전선인 눈, , , , 살갗에서 포착하는 타자 느낌이 정확하고 옹글어야 생명 네트워킹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다. 감각이 결락, 왜곡, 위축, 증강되어 있다면 이후 모든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문제 본인은 물론 의학마저도 감각이상을 다만 분과 기능 문제로 처리해왔다. 감각은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를 아울러 살피는 척후다. 감각인문사회학, 감각생태학이 필요하다.

 

감응은 자기 삶 기존 경계를 지우는 일대사건이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일단 새로이 펼쳐질 내 삶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뭔가 구체적 관계 설정이 가능해진다. ‘, 그렇구나!’ 하고 직면하는 일이 필요하다.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병적 반응은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선포다. 감응과 반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 당사자가 스스로 속거나 영악하게 속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직면하면 문제 자체를 자기 삶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받아들이는 일은 통째로 흔드는 일이다. 설혹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질서와 평안이 존재했던 기존 삶에 무질서와 불안을 대놓고 들여놓는 사건이다. 무질서와 불안은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꿰뚫고 지나갈 수 없으므로 감수는 대단히 위태로운 사건이다. 그 비용을 부담, 수용하겠다는 유연성은 실로 치명적인 관용이다. 치명적 관용은 급기야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요동이 극에 달한다.

 

극에 달해야 감화가 일어난다. 감화는 뒤집음이다. 뒤집음은 새로운 주파수에 생명을 맡기는 일이다; 산이 물 되고 물이 산 되는 일이다. 감화는 돌이킴이다. 돌이킴은 새로운 생애로 지향하는 일이다; 억압에서 자유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가는 일이다. 감화는 엎드림이다. 뒤집고 돌이키는 새로운 프레임에 절대 귀의하는 일이다; 패배를 배워 승리를 얻는 일이다. 감화 순간이야말로 결정적 순간이다. 심장 깨뜨려 눈물 만드는 이 화학 없으면 만사휴의다.

 

감화 화학은 눈물 꽃을 합성해낸다. 그 눈물 꽃을 우리는 넘치는 감정으로 경험한다. 넘치는 감정은 변화 카이로스에서 만개한다. 만개한 감정은 행동으로 흘러넘친다. 행동은 만개한 감정의 아기임과 동시에 새로운 정서의 엄마다; 변화를 추동하는 깃발이자 변화를 축하하는 팡파르다. 어제 예기와 내일 기억을 가로질러 오늘을 실현하는 행동은 형상 입은 감정이다. 형상 입은 감정은 찰나마다 감화를 추체험한다. 추체험 무한 중첩이 생명 네트워킹이다.


 

감응과 감수 단계에서 몽긋댈 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난치성 환자 한 분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이 글 기조는 여러 번 변경되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지만 교착상태를 풀어갈 실마리를 얻었다. 결정적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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