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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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보건용품은.......순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런 물질도 엄청나게 생태계로 유입되고 있다.......샴푸나 모발영양제 같은 목욕 보조용품, 피부관리 제품, 헤어스프레이, 세팅 로션, 염색약, 구강 위생용품, 비누, 자외선 차단제, 향수와 애프터셰이브 로션.......이런 제품들 속에는 거의 대부분 합성방향제가 들어 있다. 합성방향물질은 미생물로도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근육과 지방, 유방 속에 농축된다. 세계 어디든 물고기와 인간의 모유 속에서 이 물질이 검출되고 있다.......또한 방향물질은 휘발성인데다,.......스프레이로 뿌려서 사용하기 때문에 곧장 대기 중에 퍼진다. 그러면 전 세계 식물은 기공을 통해, 동물은 호흡기를 통해 이를 흡입한다. 이 물질이 바람의 기류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았을 것 같은 노르웨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자외선 차단제 성분도 생체에 축적된다.......휴양지 호수에 사는 물고기 속에서 특히 높은 농도로 검출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개인보건용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142~143)

 

내가 생태 위기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생태라는 용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환경이라는 용어를 든 환경운동이 운동의 변방에서 겨우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인연으로 생태학과 여성학을 연결해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당시 상황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관심을 개인의 일상에서 조금씩 구현해 나아갔다. 대중 목욕시설 출입을 하지 않고 집에서 샤워할 때도 머리 같은 특정 부위를 빼고는 비누를 쓰지 않기 시작했다. 7년 전부터는 머리를 감을 때도 샴푸를 쓰지 않는다. 이발소 출입도 하지 않는다. 수염을 기르면서 일주일에 한 번 극히 제한적으로 부분 면도할 때 이외에는 세안도 비누 쓰지 않고 한다. 남성용 화장품도 일절 쓰지 않는다. 근래 미세먼지와 코로나19 때문에 착용한 마스크 줄이 바깥귀에 일으킨 피부 문제로 보습제를 쓰고 있다. 아내가 권해주는 몇 가지를 마다하고 최소한으로 줄여 쓰는데 마음이 사뭇 불편하다. 나름 각별한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이런저런 개인보건용품이 내 삶 구석구석에서 지분거리고 있다.

 

정색하고 주위를 돌아보면 개인보건용품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통계에 확 잡히지도 않고 통제에 똑 따르지도 않는 이 소잡한 것들의 광대한 준동. 문제의식을 거듭제곱근으로 갈아먹어버리는 악마적 디테일. 이탈리아 바리에서 스프레이로 뿌려진 한 분자의 합성방향물질이 기류를 타고 흐르다 대한민국 서울 반포천변에 서 있는 버드나무 기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을 누가 예측할 수 있으며, 그것이 버드나무 생리를 중대하게 왜곡할 단초가 되는 일을 누가 이해할 수 있는가. 예측도 이해도 불가능하면서 잘도 사고치고 잘도 해맑게 살아가는 인간을 생각하면 실로 아득 무인지경이다. 현실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어떻게 이 준동에 연루되는가는 자신의 선택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므로 모순을 안고 아라한을 거부하려 할 때 삶은 더욱 막막해진다. 한의사의 경우, 시침이나 사혈을 한 뒤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 당연한 이일에 고민이 끼어드는 것은 비누 사용 여부 때문이다. 생각 없이 늘 비누를 쓰기도, 매번 물만으로 씻기도 무엇하다. 100% 천연비누 사다 쓰면 고민 끝일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문제 자체가 100% 고립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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