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테파노 만쿠소가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동물은 외부 자극의 종류가 다양함에도 언제나 동일한 솔루션을 이용해 응급상황에 맞선다. 이 대응이 바로 이동이다. 이동은 해결책이 아니라 난관을 회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식물에게 중요한 것은 효율적인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더위나 추위, 혹은 천적의 출현에도 불구하고그 자리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양하게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해 지속적으로 솔루션을 혁신한다.”(식물 혁명(146~147))

 

사실 그 동안 나 역시 동물의 이동을 회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식물의 해결책도 능동적 혁신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 소식 접하면 망집이 궤멸된다. 한 생각 돌이키면 세상이 전복된다. 인간이 일으킨 거대한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찬란한 문명도 눈부신 과학도 숭고한 윤리도 본질은 도망질이었다. 한 자리에 뿌리 내려 살기로 한, 무참히 밟히고 꺾이고 베어짐에 적응하기로 한 선택은 지구 바이오매스 거의 전부를 차지한 식물의 적극 행동이었다.

 

식물 혁명에 따르면 식물의 생명 성취는 상호 필수불가결한 기축으로 구동된다. 분산(분권) 시스템, 군집 지능(집단 지성), 공동체 네트워킹의 셋이다. “초록민주주의”(137). 이는 원효를 좇으며 내가 40여 년에 걸쳐 구성해온 사상체계의 핵심과 일치한다. 놀랍지 않다. 정말 놀라운 것은 식물 세계가 이미 도달한 자연Sein을 인간 세계는 아직 당위Sollen로 추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도망질을 딱 멈추고 전방위·전천후로 식물에 귀의해야 한다.

 

식물에 귀의해 인간은 그 무엇보다 이 요구가 특이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각성부터 한다. 인간의 광적 도망질이 빚어낸 지구생태 위기가 매순간을 종말론적 카이로스로 자리매김 하기 때문이다. 각성은 지구 전체에 동시적으로 일어나, 평등하고 평화롭고 평범한 분권 연방체 구성, 평등하고 평화롭고 평범한 생명 간의 상호소통으로 수승한 집단 지성 생성, 평등하고 평화롭고 평범한 150인 공동체 200만 개 이상의 네트워킹 가동으로 번져간다. 헛꿈 아니다.

 

인류는 목하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있다. 어찌 감염만 순식간에 지구 전체로 확산되겠나. 위기를 실감한 인류는 동시에 수십억 장의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지 않았나. 지구생태 위기에 대한 식물 생명적 각성에서 비롯하는 일련의 운동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대대적 사막화가 문명폭발의 뇌관이 되었듯, 지구적 전염병은 문명개벽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이 개벽은 인간 텍스트에 터한 인간 혁명이 아니다. 이 개벽은 식물 텍스트에 터한 식물 혁명이다.

 

식물 혁명은 Revolution not through but by vegetal being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