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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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인데, 그런 자식을 보내고 내가 살아야 될까? 사는 게 맞는 건가?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거든요. 내가 너무 밉고 못 견디겠는 거예요. 진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라면, 내 새끼가 갔는데 나도 따라가야지. 말로는 귀한 내 새끼라고 하면서 자식 보내고 살아가는 게 맞나? 엄마로서? 부끄러웠어요.(238쪽-김혜선 엄마 성시경)


부끄러움은 다만 감정이 아니다. 부끄러움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집요한 메시지이자 표독한 에너지다. 존재 부정의 근거로 지목되는 과오는 법적·도덕적 차원을 뛰어넘어 근원 윤리에 가 닿는다. 생명연대에서 하나가 사라진 뒤에도 살아지는 나머지 하나에게 가해진 자기배신의 기별과 충격이다. 416엄마는 이 슬프고 아픈 청천벽력을 어찌 품어 안을까.


사랑이란 상대방이 지어가는 삶의 무수한 결을 그 과정마다 동참하는 곡진함이다. 진부한 얘기다. 진부한데 왜 우리는 사랑에 이리도 무참히 실패하는가. 삶의 결과 결 다름을 감지하는 데 무력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죽음의 방식으로 존재할 때, 인간의 무력은 극대화된다. 심지어 낳아준 엄마조차 이렇게 부끄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지만 죽음의 결, 그 과정에 대체 어떻게 동참한단 말인가. 아득하고 가뭇없는 길이다.


산 자가 죽은 자에 가 닿는 첫 걸음은 부끄러움의 직시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메시지를 집요하게 새겨야 한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에너지를 표독하게 휘감아야 한다. 산 자로서 에고의 거점을 지워나가다 그 벼랑 끝에서 한걸음 더 내디디는 찰나 죽은 자의 세계로 날아오른다. 이것이 영성이다. 이것이 대승이다. 이것이 무한-신 네트워킹이다. 이것이 416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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