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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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사물의 궁극적 실재를 거의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붓다에게 중요한 단 하나의 문제는 타락 이후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고통에서 인간을 놓여나게 하는 것이었다.(365쪽)


  한 가지 의미에서 불교-적어도 초기불교에서-는 완전한 “타락 초월” 운동이 아니다. 불교에는 세계가 신성하다는 의식이 없다. 지상에서의 삶은 항상 고통스러울 것이다. 자유는 물질세계를 초월해야 온다.(367쪽)


  그러나 2세기경부터는 타락 이전 세계관으로 완전히 돌아가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외향성 전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것은 모든 실재를 영혼의 현시로 보았으며, 인간 육체와 물질 영역 전체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이 시기에 열반과 삼매는 하나라는 급진적인 대승불교 운동이 오래된 남방불교 전통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승불교의 중요 경전인 반야심경에 따르면 “형태가 있는 것은 형태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형태가 없는 것은 형태가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영혼이 물질이며 물질이 영혼이다.·······열반은 육체를 두고 떠나 물질적 영역을 초월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384쪽)


흔히 불교사상을 심오하다 하지만 본디 붓다의 관심사는 심오함과 거리가 멀다. 붓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무기無記인데 심오한 질문들에 답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붓다는 오직 “고통에서 인간을 놓여나게 하는 것”에만 유의할 따름이다. 경험적 실용주의 정도로 삶에 대한 붓다의 태도를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 고통의 유래까지도 경험과 실용 범위 안에서 찾는 것이 붓다답다. 붓다는 고통의 원인이 갈망craving이라 한다. 스티브 테일러는 갈망의 근원이 자아폭발이라 한다. 스티브 테일러는 그 차이가 “사소하며slight” “최종 결과는 같다”고 한다.(367쪽) 과연 갈망의 극복과 자아폭발의 극복은 같은 것인가?


최종 결과가 같으려면 그 사소한 차이에 유념해야 한다. 실제 차이는 자아폭발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가 천지를 가른다. 자아폭발을 모르고 하는 행위는 초월의 노력일지라도 자아폭발 메커니즘을 따른다. 불교수행이 고도한 정신 에너지를 고립 상태로 집중하는 방식인 이유가 여기 있다.


안다connaître는 것은 함께 태어난다naître avec는 것이다(미셸 마페졸리). 자아폭발의 진실을 알고 초월하려는 사람은 공동체적·생태학적·디오니소스적 방식에 열려 있다. 홀로 세계를 떠나 주지적 각성에 이르는 아라한프로젝트는 자아폭발의 세련된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붓다의 의도와 무관하게 불교는 이 얼굴로 산다.


급진적인 대승불교가 “열반은 육체를 두고 떠나 물질적 영역을 초월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아 色卽是空 空卽是色을 천명했지만 온전히 “세계가 신성하다는 의식”에 이르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적어도 오늘날 이 땅 불자들을 보면 불교 신비전통은 실제 삶과 무관하다. 분리문명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라는 유명한 선문답이 있다. 여기서는 개미의 불성까지 거론된다. 식물이 거론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승려들이 육식 않고 채식하는 걸 뭐나 되는 듯 내세우지만 사실 종적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피상적 생명관일 뿐이다. 바랭이 풀 한 포기를 부처로 섬길 수 없다면 타락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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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9-03-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자아농도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말을 할 때마다 나를 내세우고 싶어하는 자의식이 너무 짙어서 자기 농도를 낮추라는 말씀이 인상깊었거든요.

bari_che 2019-03-13 13:41   좋아요 0 | URL
아, 그런 표현이 있군요. 실은 제가 코이케 류노스케를 잘 모릅니다. 죄송^^

자아농도가 높다는 말은 자아가 폭발했다는 말과 동일한 맥락인 듯합니다. 다만 농도는 그야말로 정도 문제이고 폭발은 분리 문제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달라보입니다. 분리는 존재 자체를 왜곡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