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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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훌륭한 인간들이 이곳에 존재하는가!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오, 멋진 신세계여 ……

 

 

2540년 드디어 인간은 복제에 제대로 성공한다. 그것도 몇 명이 아닌 수십 명을. 인간은 복제를 통해 철저히 통제된 신세계를 만들어낸다. 더 이상 인간은 인간의 몸에서 태어날 필요가 없다. 유전자를 조작하고 우성과 열성인자를 구별하고 지능과 외모를 정확하게 구분 지어 계획한다. 태어난 후에도 반복적인 세뇌와 자극을 통해 완벽한 피라미드 계급사회를 구축한다. 사람들은 각자 주어진 계급의 틀안에서 아주 만족하며 살아간다. 불행, 절망, 아픔, 고통, 시기, 질투, 불만족, 고독, 우울.. 등의 단어는 이곳에서 쓸모없다. 소마(일종의 마약)만 있다면 그러한 불쾌감은 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질병도 없고, 늙지도 않는 완벽한 유토피아다. 하지만 그들에겐 완벽한 세상일는지 몰라도 누군가의 시선에 보면 그들은 단지 멋진 노예일 뿐이다. 그 세상을 계획한 자의.

 

오 신이시여가 아닌 오 포드시여~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곳.

이곳 사람들은 포드를 절대적 존재로 인식하고 이런 사회를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첫 장면부터 아주 디테일하고 친절하게 이 멋진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인간이 태어나고 계획되어 주어진 계급의 틀안에 내던져지는지를. 어찌 보면 자유로워 보이지만 지독히도 자유롭지 못한 세계이자 모든 사람이 동일한 감정으로 원하는 욕구를 충분히 즐기며 행복감을 느끼는 사회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도 불량품이 있듯 이곳 공장에서 태어난 상위 계급 중에도 불량 인간이 있다. 일명 자아의식이 강한 자들이 그런 불량 인간에 속한다. 그런 인간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격리된다.

 

버나드는 알파 계급이지만 외모는 그렇지 못하다. 분명 어딘가 착오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버나드는 같은 계급장들에게 받았던 멸시와 자기비난의 결과로 나답게 사는데 눈을 떠가고 있었다. 그는 점점 이 신세계에 의문을 갖는다. 그것은 어찌 보면 외모에서 오는 불만족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자꾸만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하다 결국 불쾌감을 떨쳐버리는 게 과연 옳은 일 인가하고 의문을 품게 되자 소마를 거부하기도 한다.

 

레니나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자유분방한 연예를 즐기며 자신의 틀안에서 충분히 즐기며 산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작은 호기심이 생긴다. 야만인 구역을 방문하고 싶어 한 것이다. 야만인 구역이란 평범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다. 출산을 하고 가족이 있으며 신을 믿고 질병과 늙음이 있는 곳 말이다. 레니나는 버나드가 심리학자인 장점을 이용해서 그를 꼬드겨 야만인 보호 구역을 탐험할 계획을 세운다. 버나드의 튀는 성격이 맘에 걸리긴 하지만. 철저한 공동체 사회에서 어느 한 계급이, 또는 한 개인의 일탈은 위험한 것이다. 마치 기계의 작은 부품이 고장 나면 작동이 멈추는 것처럼. 그래서 레니나는 버나드의 그런 행동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게 야만인 구역에 들어온 레니나와 버나드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말로만 들었던 어머니의 존재, 늙음, 질병, 오물, 제신 등을 보게 되자 혐오감을 감출 수가 없다. 게다가 오래전 실종되었다던 린다와 그녀의 아들 존을 만나게 되는데 린다가 출생을 했다는 사실보다 이미 늙고 뚱뚱해져 버린 그녀의 외모에 경악하게 된다. 버나드는 신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자 하는 마음에 이 둘을 신세계로 데리고 가게 되는데.

 

예상했듯이 존과 린다를 본 신세계 사람들의 반응이 볼만하다. 그들은 마치 끔찍한 병균을 보듯이 한다. 특히 린다의 늙어버린 모습에 구역질을 하고 존이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소름 끼쳐 한다. 존은 멋진 신세계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행복해하는 사람들 틈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린다가 소마 과다 복용으로 죽자 극도로 흥분하게 된다.

 

어떻게 작가는 1932년에 이런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었을까. 우리가 걱정하고 우려하던 일들이 소설 속에서 그려지자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만 같아 소름이 돋는다. 책을 보는 내내 여러 편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영화 [이퀄스]의 사회가 유독 떠올랐다. 사랑이란 감정을 죄악시하며 감정이 철저히 통제된 사회에서 유전자가 조작되고 불만족 없이 무표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는 이 통제된 사회보다는 더 밝은 곳이다. 소마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점이라면 과거가 철저히 지워지고 통제되었다는 점이다. [이퀄스]의 주인공들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감정이 생겨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전 인류의 과거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를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렸다. 거기엔 책도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고전문학이나 인문학 책은 위험한 물건일 뿐이다. 존이 난동을 피우고 통제실로 끌려간 뒤 통제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 모든 것이 설명되고 있다. 왜 그들에게 책이 죄악인지를.

 

존은 불행마저도 통제된 이 사회를 인정할 수 없다. 어느 정도의 불편한 상황에서 갈구하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임을 존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가 배제되고 약에 의존해 행복감을 만들어내는 사회를 미쳤다고 결론 내린다.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배척당하다시피 한 존이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곤 죽음뿐이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이상향이라는 건 없다. 인간은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 수 없고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에 또 다른 누군가는 행복을 느끼게 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발전한 과학은 이처럼 인간에게 엄청난 비극 사회를 안겨 줄 수도 있음을, 그러한 유토피아를 계획한 것조차 인간의 헛된 욕망임을 자각해야 한다. 반면 각자의 병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신세계인들을 보며 현재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문명인들처럼 지나치게 행복을 쫓아 자신을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불안한 현실을 외면하고 그들처럼 자아의식 없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또한 디스토피아를 통해 진정한 유토피아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지난달에 템페스트를 읽으면서 내가 원서를 읽을 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대사가 실생활에 써먹고 싶을 만큼 통쾌하고 빵빵 터졌기 때문이다. 마치 찰진 사투리가 외국어로 번역이 안되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저자도 그래서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었을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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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야, 조선을 적셔라 숨 쉬는 역사 11
조경숙.이지수 지음, 원유미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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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군주는 백성들의 삶을 잘 보살펴야 한다. 백성들의 고충을 잘 헤아리고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게 신경 써야 제대로 된 군주인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조선 4대 왕인 세종이 집권하던 시기다. 세종은 수많은 업적을 이루며 가장 찬란한 시기를 이루었으며 서민들의 고충도 잘 헤아렸던 군주로 평가받는다. 특히 천문학과 과학의 발전이 두드러졌던 때이기도 하였다.

 

제아무리 뛰어난 군주라도 자연 앞에 선 한낱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시절 군주는 곧 하늘이자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군주의 덕망과 날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한 해 농사로 먹고살았던 서민들은 날씨가 정말 중요했다. 비가 와야 하는 시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그 해 농사를 망치게 되고 그러면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으로 허덕였다. 반대로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농민들에게 농업기술을 향상시키고 자연재해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었다.

 

세종뿐 아니라 문종은 나라의 가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원스럽게 한 번만 내려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 비는 내리다 말다 하며 애간장을 태운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마음을 달래는 길은 하늘에 비는 것뿐이다. 기우제라도 지내서 비가 양껏 내려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 시절 비의 양을 가늠하기가 어려워 해마다 곤욕을 치른다. 그래서 문종은 비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야기는 측우기를 만들게 된 이유와 과정을 선보이고 있다. 측우기가 왜 필요했는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측우기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재미난 동화로 엮었다. 측우기의 생김새나 사이즈를 정확하게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남아있는 측우기가 유일하게 한 점뿐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과학기술 면에서는 1442년 이천·장영실(蔣英實)이 우량(雨量) 분포 측정기인 측우기(測雨器)를 제작하였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 200년 앞선 것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조의 딸인 평창은 호기심이 많고 천방지축이긴 하나 똑똑하고 성품이 바른 어린이다. 하는 행동이 정말로 천진난만하다. 게다가 붙임성도 좋다. 평창을 돌봐주고 있는 소화를 무척이나 따른다. 하지만 나라에 가뭄이 심해지자 국비를 줄이기 위한 직책으로 궁녀 수를 줄이기에 이르고 소화는 궁 밖을 나가게 된다. 어린 평창에게 소화의 부재는 무척 큰 상실감을 가져다주는데 보는 나도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온 나라가 가뭄 때문에 걱정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마당으로 뛰어나가 호미로 땅을 파보거나 흙 속에 손가락을 넣어보며 얼마나 비가 왔는지 쟤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기특하다. "사내아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꼬"라는 문종의 대사를 보니 참말로 그러했나 보다. 그런 모습을 기특하게 여긴 문종은 평창에게 나랏일이라며 중요한 임무를 하나 맡기게 된다.

 

세종은 나라의 근심이 커지자 몸이 부쩍 좋지 않게 되고 그런 세종을 지켜보던 대신들과 문종은 온천을 권한다. 하지만 나라에 가뭄이 심한데 온천은 과욕이라며 자꾸만 거절하지만 몸이 더 안 좋게 되자 온천욕을 떠나게 된다. 대신들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떠났던 문종은 궁으로부터 급한 전갈을 받게 된다. 흙비가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나라에 흙비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입궐을 해야 마냐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데 만에 하나 흙비가 아닌 송진가루라면 왕의 온천행은 별반 차도 없이 끝날 것만 같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사이 궁으로 보낸 내관에게서 좋은 소식을 받게 된다. 평창이 맡았던 임무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그러한 과정을 그리며 측우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가뭄과 홍수를 어떻게 대비하는데 유용하게 쓰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수차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한심한 관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탁상공론의 전형을 보는듯하다. 무식한 농부의 말이라며 무조건 까고 보는 자세가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다. 농사도 지어보지 않은 것들이 어찌 농부보다도 농사일을 잘 알 수 있을까. 예조 판서의 사대주의에 너무 화가 난다. 문종의 따끔한 훈계에 속이 다 후련하다.

 

이렇듯 군주가 선견지명이 없고 현명하지 않으면 나랏일을 크게 망칠 수도 있다. 그러기에 국민들도 더 똑똑해져야 할 것이다. 수차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했던 농민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아무리 의견을 말해도 귀 기울 지지 않는 군주라면 묵살되기 일쑤니 무엇보다 군주가 세상사에 밝아야 한다.

그 시대의 유물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이런 발명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정교하고 과학적인 지도 알 수 있어 놀랍다. 측우기뿐 아니라 강물의 높이를 재던 수표의 역할도 살펴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보충 설명 페이지가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설명해 주기에도 좋다. 평창이 어떻게 나랏일에 큰 힘이 되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아이와 함께 활동지도 해 보았다. 청어람 주니어 블로그를 방문하면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지가 있다.

활동지는 독서 전-생각 그물, 독서 중- 낱말 퍼즐, 독서 퀴즈, 독서 후-독서 토론·토의 총 3차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이의 생각을 쓰는 것이나 낱말퍼즐도 어렵지 않게 풀어볼 수 있다.

 

항상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는 걸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었는데 활동지가 풍성해서 정말 도움이 되었다.

엄마표 학습지도로 정말 좋으니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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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1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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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초 이 책은!

처음 샘플북을 접했을 때도, 달의 제단 시간 여행 때도(이때 첫 장면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ㅎㅎ), 문학동네 북클럽 생일선물 도서로 도착했을 때도(솔직히 에잉? 했다.ㅡ.ㅡ)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만화책을 잘 안 보는 이유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어머니 하면 신파가 먼저 떠오르고 신파는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이다. 예전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울컥하고 뭉클하긴 했으나 내겐 그냥 그런 느낌의 소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엄마 사이엔 그런 애틋함이 없었다. 그런 마음이 생길 틈도 없이 나는 지나치게 독립적으로 자랐다. 지나서 느낀 거지만 엄마도 그렇게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엄마도 늙어서인지 자꾸만 내게 기대려고 해서 삐거덕거리는 중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애초에 이색리뷰는 밀어 놓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냥이님의 전문가 냄새 풀풀 나는 리뷰를 본 것이다. 만화에 대한 선입견도 깨주시고 이 책을 제대로 어필하고 계셨기에 그래? 한번 읽어나 볼까! 했다. 부랴부랴 읽던 책 엎어놓고 1부를 읽기 시작했다.

 

일단 그림이 심하게 심플 간결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떠오르는 아이들 동화책도 연상되고 신문 어디 귀퉁이에 있는 일일 연재만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 번째로 함경도 사투리가 너무 구수하다. 경상도 사투린 착착 감으며 읽을 수 있는데 우째 위쪽은 선뜻 들어오지가 않는다. 하지만 북한 억양을 상상하며 읽으니 재미나기도 하다.

 

이야기는 작가의 엄니의 엄니 세대까지 올라가서 시작된다. 엄니의 엄니는 아들 하나에 딸 넷, 시아부지, 시누 둘, 남편, 죽은 조상들까지 챙겨야 되는 고된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시아부지 변덕에 며느리 두 손 두 발 바쁜 모습에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그 노인네 진짜 성질머리 한번 고약하다. 기껏 야밤에 떡을 해다 바쳤더니 일찍도 해온다며 소쿠리를 뒤집어엎는 본새가 영락없는 팥쥐 엄니다. 내가 아는 지인의 일화 중에 콩소쿠리를 엎은 시아부지도 있긴 했다.

그러다 분명 시간 여행 때 언급했던 그 장면에서 멈춘 순간. 뜨아~~하면서 머릿속에 연상되는 서양 작품이 있었으니.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두고도 아직까지 시끄러운 그 작품. 시몬과 페로. 뭐 사연이야 달라도 며느리나 딸의 애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암튼 살짝 충격적인 장면은 후딱 넘기고 나니 그다음부턴 귤 까먹으면서 읽기니 참말로 재밌었다.

 

 

 

 

 

 

 

 

고작 1부만 읽었는데 워낙에 버라이어티 한 인생을 사셔서인지 이야기가 한 보따리다. 정말 작가의 말대로 고향을 풍성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그러니 딸이 엄마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 것이겠지만.

전기도 없던 초가집 시절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지금의 빌라까지 이르렀으니 별별 사연이 다 있겠다. 그 덕에 이야기 듣는 재미도 있지만 딸과 엄마의 케미도 참 부럽게 느껴졌다. 결혼 안 한 딸에게 결혼해서 부부생활이랑 해야 몸에 좋고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통에 빵 터졌다. 게다가 음식을 조물조물 함께 만드는 장면도 어쩜 그리 다정해 보이는지.

 

네 집 일이 내 집 일이던 시절. 죽을 고생을 해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일제의 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억척같이 선산을 지키며 가족을 위해 살았던 정신들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있는듯했다. 그렇듯 여러 일화를 들으며 세대공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요즘 아이들은 당최 이해불가라고 한다. 왜 말도 못 하고 저러고 사냐고. 그런데 그런 말을 나도 울 시엄니에게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난 체 한 것밖에 안되니 부끄러울 뿐이지만.

 

울 시엄니는 플로베르의 [세 가지 이야기] 중 하나인 [순박한 마음]에 나온 그 여인과 어딘가 닮았다.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시집와서 시엄니 구박뿐 아니라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듣고 농사일이며 집안일에 자식 셋 키우느라 한 평생 보낸 분이다. 그랬던 시엄니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수록 교회에 더 집착하셨다. 책에 보면 엄니의 엄니가 글도 모르는 분이 찬송가를 금시 외워 불렀다는 장면을 보면서 노래하면 찬송가뿐 그 어떤 노래도 모르는 울 시엄니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덕분에 결혼 초 예수 믿으라고 닦달하시는 통에 시엄니와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다른 분 같았으면 섭섭해서 쌓아두거나 싫은 티 팍팍 내실텐데 그래도 우리 며느리가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작은 것에도 엄청 고마워하신다. 게다 자신은 배운 거 없이 이리 살았지만 너는 하고픈 거 다하고 살라며 응원도 해 주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시엄니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건 순전히 그들의 역사를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들의 산 역사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또 옛날 얘기 꺼낸다고 한 귀로 흘려듣고 했었기에 그들의 뼛속 깊이 들러붙은 습관을 무시하고 비난만 한 건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되었다. 이젠 정말 잘 들어 드려야겠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더라도 말이다.

 

엄마의 엄마. 그리고 지금의 엄마.

그 시대의 무게를 감당하고 견딘 이들이 있기에 마냥 고맙고 또 고맙다. 그네들의 삶이 곧 살아있는 역사란 걸 알게 되었기에 결코 잊혀서도 안되고 사라져서도 안됨을 이 만화책 한 권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 출처. 네이버 -

 

 

 

 

초가의 소박한 선들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여인네들의 뒷모습과 움직임 하나에도 삶이 보여서 인지 책을 덮고 나서는 박수근의 그림이 떠올랐다. 박수근은 밀레 같은 작가가 되고자 했다. 당연히 밀레 하면 만종이 떠오른다. 만종을 보며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들의 삶뿐 아니라 우리네 삶도 무탈하길 기도해본다.

 

 

 

- 출처. 네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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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병아리 삼 형제는 어떻게 살았을까? 산하작은아이들 63
올가 데 디오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산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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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끝이 있을 수 있을까. 삶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지듯 이야기는 끝이라는 게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끝'은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기도 해.

 

 

 

어린 시절 [황금 알을 낳는 암탉]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뼈아픈 교훈을 배운 적 있을 것이다. 이야기에서 농장 주인의 욕심으로 그만 암탉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아~~ 안돼! 했었던 마음뿐 아니라 농장 주인의 어리석음에 바보라고 흉도 보았었다. 아이들에게는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니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 한다며 말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는 끝나버린 이야기를 새롭게 되살린다. 그리고 아주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다. 농장 주인이 팔아버린 황금알에서 병아리가 태어났다면? 그렇다면 그 황금 병아리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작가는 그 단순함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숨겨 놓았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꾸준히 사회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어 어른들이 독서지도를 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첫째 엘리오는 조용한 마을에서 좋은 이웃들과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황금의 귀함을 말하지 않기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경이 파괴되어 엘리오가 사는 곳은 폐허가 되었다. 결국 희망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야 했지만 황금에 눈이 먼 사람들 때문에 계속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노란 돌덩이도 환경이 파괴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 당장 황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되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둘째 마르틴은 뛰어난 예술가다. 그는 '황금 화가'라는 이름을 얻으며 더욱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보다 이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우리는 어떠한 물건의 가치를 브랜드화하기도 한다. 브랜드화된 상품에 다시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 본질을 잊고 껍데기에만 치중한다. 예술마저 상품화해서 가치를 따지는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예술을 이해하기나 할까. 브랜드에 빠지는 아이들에게 실속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것은 정말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막내 로케는 가장 큰 알에서 태어났고 황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곳에서 산다. 워낙 몸집이 커서 자신의 몸 일부를 떼어 팔아도 표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멋진 옷, 멋진 차에 빠지기 시작하자 그의 몸은 거의 뼈만 남는다. 뼈만 남은 모습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볼품없고 초라해진 몸뚱이에서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것은 금니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책방 앞을 지나다 낡은 책 한 권과 바꾸게 되는데..

로케가 산 그 한 권의 책은 로케와 다른 형제들의 삶을 바꾸게 된다. 역시 제아무리 황금이 귀해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책! 임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삼 형제는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삼 형제의 삶은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인생이 없다. 황금 앞에서 인간들의 탐욕은 끝이 없으며 결국 그 끝은 파멸임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혼자가 아닌 여럿이 힘을 모아 어떤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더 다양한 생각을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이 정말 심플하면서 세련된 느낌이다. 삼형제 병아리를 각각 특징에 맞게 표현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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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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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만큼 좋은 게 없었어요. 일요일마다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미스 제니 같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간접 체험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런 종류의 책에 여전히 끌린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책을 가까이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만큼 이젠 정말 제 취향에 딱맞는 책만 읽고 싶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무엇보다 저의 세계를 재발견할 수 있고 마치 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친숙한 상황을 다루면서 제 가정생활과 다름없이 관심과 마음을 끄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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