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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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고전 [오만과 편견]을 모른다면 이해하기 난해하다. 왜냐하면 고전을 현대판 로맨스로 재해석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 오만과 편견의 캐릭터 구조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몇 년 전에 보았던 영상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오버랩되어 색다른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었다.

소설은 할리퀸 로맨스라는 장르답게 소녀 취향이다 보니 로맨스 DNA가 거의 소멸되다시피한 나로선 낯간지러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서 시들어버린 소녀감성을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선남선녀의 오그라드는 대사에도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었다.

케이시의 직업은 요리사다. 어려서부터 바쁜 엄마의 부재로 인해 찾은 재능이 요리사였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는 동안 그녀는 애인이 떠나버린 사실도 모르게 된다. 정말 어떻게 애인이 떠나버린 사실도 모를 수 있을까. 결국 돌아온 건 인생의 허무함과 외로움뿐이었다.
그 뒤 그녀는 친구와 서머힐이라는 작은 도시로 날아가 그곳에서 열릴 예정인 연극 공연의 음식을 담당하는 일을 맡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눈앞에서 홀딱 벗고 샤워하는 남자와 시끄러운 첫 대면식을 치른다.
그렇듯 낯선 장소에서 사건사고는 늘 오해를 동반한다. 케이시는 머물던 집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집주인조차도 그 집에 누가 머물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즉 그녀와 마주친 훈남은 케이시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의 집 주인이자 유명 배우이다.

잘 나가는 배우와 평범한 요리사라는 조합은 이미 여성 독자를 신데렐라 코드로 유혹하기 좋은 소재이다. 테이트의 입장에서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외쳐대는 여자라면 호기심이 들 수밖에. 그래서 톡톡 쏘아대는 케이시의 매력 플러스  그녀가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요리는 테이트를 유혹하기 충분했다. 그러는 사이 연극 오만과 편견의 오디션이 열리고 연극의 홍보와 이목을 끌기 위해 디아시역에는 테이트가 낙점된다. 그리고 상대 배역인 엘리자베스 역은 자연스럽게 케이시에게로 기우는데 마치 두 사람의 관계는 고전 속 상황과 엇비슷해 보인다. 첫 만남에서 생긴 오만과 편견이란 얼룩이 서서히 지워져가는 과정이 봄기운처럼 전해졌다.

두 사람을 비롯하여 서머힐에 얽혀있는 복잡한 가계도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인물구조는 고전 속 여러 인물들과 닮아있다. 물론 좀 더 세련되고 현명하게 변모한 캐릭터도 있다. 흥미로운 과거사를 데려와 현재의 갈등을 해결해가는 동안 연극의 배역들도 하나둘 자리를 잡아간다.

신선한(?) 두 사람의 만남에 무턱대고 시작된 케이시의 편견은 테이트가 공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파이를 먹어치우면서 짙어지게 되었고 테이트의 오만함은 케이시의 안방을 들쑤시고 다닌 공작새의 오만함에 비유되어 오해가 시작되었다. 즉 고전 [오만과 편견]을 [파이와 공작새]에 빗대어 표현한 점이 신선했다.

“이런 짓을 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네요.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여기 집주인이니까. 그리고 당신은 영화배우 님이니. 남이 살고 있는 데 함부로 들어와서 음식을 훔쳐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거군요. 어때요, 내 말이 틀려요? -p.80

“저는 집 안에 들어온 공작새를 쫓아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절대로 믿지 않을 거예요. -p.150

로맨스가 전부인 듯하지만 서로를 향한 억측과 추측, 그리고 모함으로 뒤틀릴 수도 있었던 인간관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초반 케이시의 행동에 조금 짜증이 일기도 했다. 본인이 판단한 대로 결론 내리는 모습은 요즘의 현대인들의 습성과 흡사해 보였다. 섣부른 판단이 불러온 결과는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
까칠한 케이시가 편견의 장막이 걷히고 테이트를 향한 사랑이 불타오르기까지 짜릿하고 달달한 로맨스에 맘껏 취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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