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애초에 시간이란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해와 달은 늘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다. 단지 생명체만이 태어나고 소멸한다. 그래서 인간에겐 이 시간이란 개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시간과 수의 개념은 인간의 두뇌가 진화하는 만큼 정교해졌고 인간의 삶도 그만큼 편리해졌다. 하지만 점점 인간은 시간 속에 갇혀 살고 심지어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에게도 역사란 것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시간의 역사란 시간이 체계화되고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기까지의 과정을 일컫는 걸까.

저자 사이먼 가필드는 시간의 개념과 단면들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한다.
인간의 삶을 시간이 지배하기까지 시간에 영향을 받은 자들, 시간의 영향력에 순응하고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자들뿐 아니라 시간을 사고파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비판하기도 하는 등 폭넓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p.335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호흡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주어진다. 그래서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했고 점점 시간도 획일화되어갔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시간은 가속도가 붙으며 인간세계를 변화시켰다. 가속도를 더한 기계들과 전산망은 인간들을 편리함으로 이끌었지만 그 만족함에 반비례하며 상실감도 커져갔다.

시간은 모든 분야를 휩쓸며 인간을 가르치려 들었다. 그래서 순간을 잊지 못해 그 시간에 갇혀사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순간을 담아냄으로써 역사를 만들어낸 이들도 있으며 시간이 멈추거나 잡고자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또한 시간이 주는 상상은 늘 무궁무진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탄생한다. 나도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를 즐겨본다. 게다가 현대인들을 위한 시간 재테크 관련 서적들도 넘쳐난다. 이것도 몇 권 읽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득 인간들을 위해 맞추어 놓은 시스템들이 왜 인간을 이용하고 버리는 것일까. 일정에 짜 맞춘 생활을 병적으로 지키려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못해 사회에서 낙오자로 전락하는 이들을 보며 구조를 탓할 것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임을 자각해야 한다.

시간과의 싸움으로 한때를 바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시간을 쥐락펴락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대부분의 우리를 위한 지적 안내서이다. 때로는 시간에 맞춘 삶도 필요하지만 시간에 매달려 허우적거리는 삶은 불행을 초래한다. 저자는 영화, 음반, 연설, 기차, 시계, 사진, 육상 선수, 업무 등등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서 이야기하는 영국의 파운드 베리나 프랑스 음식의 예를 통해 슬로 라이프를 지향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돌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철학적 사유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잖아있지만 결국 인간에게 시간은 지나온 발자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간에 지루한 부분도 있었기에 책의 두께감을 고려해서 단락별로 끊어 읽기를 추천한다.^^

시간은 금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시간은 그냥 내 모습이고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그냥 시간이다. 그러다 디지털 시대가 빠르게 도래하고 인간의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시간이 남아돌지도 모른다는 말에 멈칫했다. 지금을 생각하면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싶지만 인간은 뭐든 적당해야 균형을 이룰 텐데 하는 걱정도 앞선다.
더불어 남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뜬금없이 이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고민해 보았다. 최근 너무 바빴나 보다. 하지만 당장에 내 손목에서 시계를 빼놓을 수는 없다. 단지 이제는 들여다보는 횟수를 줄이고 느긋해져야 할 때라는 건 알겠다.

시간, 여러분은 시간을 소비하고 만들고 잃고 아끼고 낭비하고 늦추고 빠르게 하고 지키고 자유로이 하고 할애하고 죽일 수 있습니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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