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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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모리아티 하면 인물들의 심리전이 꽤나 볼만하다. 그래서 여성 독자들에게 더욱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제본으로 먼저 만나본 이번 신작은 특히 사랑을 시작한 이들을 중심으로 상실, 실연, 증오, 미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스토커가 되어 버린 캐릭터까지 공감의 폭을 넓혀 볼 수 있다. 더욱이 흥미 있는 최면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생각의 기준점이나 문제의 시발점 등을 파악해 보며 어떠한 문제가 닥쳤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최면은 인간 내면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그 사람의 본질적인 문제를 치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흥미롭다. 예전에 테라피스트가 환자를 치료할 때 최면을 이용해 환자의 내면 깊은 곳의 문제를 찾아내어 치료하는 미드를 본 적이 있다. 다이어트, 대인공포증, 트라우마 등 최면은 다양한 면에서 효과를 발휘하였는데 엘런은 이미 능숙한 심리치료사이다. 그렇듯 그녀에겐 화려한 싱글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전문직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도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다. 만난 지 네 번밖에 되지 않은 패트릭은 그날따라 할 말이 있다고 그녀를 긴장에 빠트린다. 그러나 헤어지자는 말을 꺼낼 줄 알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나한테 스토커가 있어요."라는 황당하면서 짜릿한 내용이다. 별일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점점 미묘한 관계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며 엘런을 조여온다. 그것은 혼자였던 시간에 대한 약간의 그리움과 패트릭을 향한 사랑의 확신이라는 뭉뚱그린 감정들이 뒤범벅되어 심리치료사인 그녀조차도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워진다. 사랑에는 일종의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패트릭과 함께 덤으로 떠밀려온 것들은 요동치는 파도와 같다.

패트릭의 전여친 사스키아는 스토커다. 사스키아의 행동은 분명 금기시되어야 하지만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외로웠고 사랑했고 그렇기에 헌신한 대가는 끔찍했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일방적 이별 통보 앞에 인생을 다 건 여자라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다. 엘런의 내담자로 신분을 속인 채 두 사람 주위를 맴도는 동안 점점 스토킹의 위험수위는 높아만 간다. 그녀는 그녀만의 수렁에 빠져 마치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최면상태로 인생의 정점을 찍고 만다.

스토킹이라는 자체의 위험성과 위태로움 때문에 이 삼각관계가 어떤 끝을 보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심리치료사라는 그녀의 탁월한 감각 때문에 일은 의외로 새로운 진전을 보이며 한숨 돌리게 된다. 최면이라는 행위는 일종의 묘약 같은 느낌이다. 위안도 되고 화해도 이끌어낸다. 그리고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느끼는 동질감도 묘하지만 강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엘런은 자칫 오해로 범벅이 될 수도 있었던 관계를 잘 풀어내려 노력했다. 최면에 의지하였든 아니든 그녀는 모든 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홀로 남겨진 사스키아에게 마지막 말들을 전할 때조차 그녀는 인간적이었다. 기억을 떠나보낸다고 추억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소설에서는 특히 과거에 얽매인 사람들과 과거 속 기억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한다. 감정을 줄긋듯 그어버릴 수는 없지만 분명 과거에 얽매인 집착은 현재를 나아갈 수 없게 만든다. 패트릭은 죽은 부인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도 필요했고 사스키아에게 납득할 이별의 이유와 시간을 주어야 했다. 정말 너무나 이기적인 남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듯 사랑이라는 감정도 최면의 순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잘 순화되지 못한 과거의 찌꺼기들은 자칫 자신뿐 아니라 그 상황을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엘런이 자신의 사랑과 공간을 안정권에 놓아두기까지 상처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볼만했다.

사스키아의 대사 중 나는 당신을 스토킹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건 토킹이라고 !”라는 말장난이 콕 하고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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