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으로 만나요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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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완벽한 일 년]을 읽은 독자라면 그녀의 이번 소설이 주는 느낌을 대략 감지할는지도 모르겠다. 난 표지를 본 순간 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임이 느껴졌다. 역시나 일 년 전의 느낌과 조금 닮아있다. 조금은 황당하지만 해피엔딩만이 전하는 좋은 여운이 잔잔하게 남았던 그 느낌말이다.

해피엔딩 증후군을 겪고 있는 듯한 엘라, 그녀의 직업은 가정관리사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정관리사였다가 맞는 표현이겠다. 절친과 함께 시작한 사업에서 우정 대신 사랑을 택하고 발을 뺌으로써 필립의 전담 가정관리사이자 애인으로 6년이나 함께 지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세탁물에서 발견한 편지 한 장으로 모든 상황이 뒤바뀌게 된다. 남자친구의 외도와 느닷없는 이별 통보에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집을 뛰쳐나오게 된다.

우습게도 자동차마저 꼼짝하지 않게 되자 결국 남자친구의 경주용 자전거를 끌고 무작정 내달리게 된다. 그러다 공원 계단에서 그녀와 충돌을 일으킨 의문의 남자와 또 다른 운명의 연장선에 놓이게 된다. 만신창이가 된 채 기억까지 잃은 엄청난 부자 오스카와 갈 곳 없고 무일푼인 엘라.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이 완벽한 상황에 그녀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다. 해피엔딩 증후군은 발동하기 시작하고 결국 일은 커지고 만다.

그녀는 미신이나 운명론에 목숨을 걸 만큼 불안정한 내면을 지니고 있고 정에 자신을 내던질 만큼 희생정신이 강하다는 약점이 있다. 그녀의 긍정 에너지는 결국 좋은 시너지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오지랖이 하늘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슬슬 짜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진실과 거짓을 오가며 애간장을 태우기도 하고 또 그녀가 의도하지 않게 이상한 방향으로 일들은 꼬이기 시작하지만 그녀의 가상 스토리는 점점 견고하게 다져진다. 해피엔딩을 향한 과한 애정은 이미 그녀를 소설가 못지않은 이야기꾼으로 재탄생시켰기에 능숙하게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한편으로는 그녀를 위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인생을 해피엔딩으로 돌려놓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분명 과해 보인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만들어내는 거짓과 변명이 쓸데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오스카를 구원하면 필립이 돌아올 것이라는 연결고리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발상인지 의아했다. 이미 이야기는 두 사람의 결합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제하에 초점은 오스카의 과거에 맞추어져 있다. 엘라와 함께 탐정놀이에 빠져 내내 이야기를 짜 맞추느라 다행히 책장은 빠르게 넘어갔다.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의 새드엔딩을 두고 보지 못하고 결국은 고쳐 쓰고야 마는 행동들에 이해불가라는 느낌표를 내내 던졌다. 그런 글을 블로그에 연재하며 소통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결국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몽상가 같다는 생각에 필립이 조금은 이해도 되었다. 반대로 공상에 빠져있는 남자친구는 나도 별로일 것 같으니까. 그러나 하나 더 필립의 갈팡질팡하는 태도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로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향하고 있을 땐 엘라를 향한 공감의 문이 열렸다. 그래서 그녀가 진실을 토해내고 있을 땐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오스카를 향한 과한 연민은 그녀 자신의 내면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유추하며 그녀가 마지막 블로그에 남긴 짤막한 이야기에 먹먹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나 이야기는 급작스레 전개되는 듯한 느낌에 이르렀고 좀 더 생각할 여유가 없이 마무리되어버렸다. 신데렐라가 남기고 간 구두가 발에 맞는 순간 결혼식 장면으로 넘어가버린 동화책 같은 느낌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오스카의 잘생김에서 뿜어 나오는 매력이나 엘라의 삐삐머리 등에서 풍겨 나오는 귀여움 등처럼 로맨스 소설만의 조건들은 여성 독자들의 감성을 잘 건드리고 있다. 현대판 신데렐라 같은 모티브를 지니고 있지만 동화처럼 미모 하나만으로 해피엔딩이 아닌 그녀의 노력(?)과 진심이 통한 결과라고 보아야겠다.

제일 흥미로웠던 장면은 오스카의 대사에서였다. 기억을 잃었으니 과거를, 추억을 찾아야 한단 생각이 늘 먼저였는데 0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 나를 찾아가는 일도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나의 상태는 어쩌면 진정한 선물이라고요! 축복이요!
...
내 경우에는 모든 것이 초기 상태라고요. 모든 것이 0이에요. - p.493

마지막으로 동화의 잔혹성에 대한 의견은 동감하는 쪽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딸아이에게 들려주었을 때 아이는 두 언니가 좀 불쌍한 것 같다며 동정표를 던져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또 빨간 모자에서도 늑대가 불쌍하다고 했으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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