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영혼, 귀신, 빙의, 윤회, 환생 등을 온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그러한 초자연적인 현상은 소설의 모티브가 되어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렇기 때문에 달의 영휴는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를 가졌다.

영휴라는 뜻은 차고 기울다는 의미다. 즉 달의 영휴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에 어느 글에서 달과 생명체의 유기적인 관계에 관한 짧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여성의 월경주기나 인간의 정신 상태와 사망시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또한 늑대인간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그 글을 보고 나서였을까, 삶과 죽음을 달의 영휴라는 소재로 풀어낸 점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기묘한 느낌에 약간의 소름 돋음을 지닌 이 소설은 애달픈 사랑 이야기다.


 

"나는 달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날 거야. 그래서 너를 만나러 갈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던 여인은 그녀가 말한 대로 다른 이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갑작스레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며 놀라움을 보여준다. 열병을 앓은 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가는 모습을 통해 빙의인가 하다가 그것이 환생임을 알아차린 순간 전생의 기억들이 얼마나 현재를 지배하며 각 인물들을 엮어놓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가슴 아프게 끝나버린 사랑과의 재회를 위해 오십 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세 번이나 죽고 태어나는 과정이 짜 맞춰지다 추가되는 반전에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돋보이기도 했다.

루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은 안나 카레니나와 비슷한 생과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가 예고했듯이 예고몽을 통해 루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환생한다. 그녀의 못다 한 사랑, 미스미와의 간절한 만남을 위한 여정에서 그 죽음과 탄생의 간격은 길지 않았다. 환생을 위한 종착지였던 미스미는 루리와의 짧은 만남이 너무나 강렬했다. 연상의 여인이 남기고 간 자취를 벗겨낼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생전에 그녀가 남겼던 달의 영휴를 믿으며 다시 찾아올 그녀를 기다린다. 어찌 보면 조금 무섭기도 한 그녀의 말은 썩 로맨틱하지만은 않지만 둘만의 암호는 말 그대로 빛이 난다.

 

"루리와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

 

그렇듯 소설은 그 과정을 독특한 구조로 풀어내고 있다. 루리라는 딸이 있었던 오사나이는 두 모녀와 만나고 있다. 그들의 분위기는 그들의 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어색하다. 그곳에 있는 여자아이의 이름도 루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상한 관계에 놓인 세 사람이 만나 두 시간 정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루리의 돌고 도는 환생 과정이 들추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옮긴이의 말대로 두 번 읽기 좋은 책이라기보다는 두 번은 보아야 한다. 헤깔리는 이름들과 세 번이나 환생하며 이야기에 또 이야기가 덧씌워져 있기에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여러 인물들 중 루리의 남편이었던 마사키라는 인물은 루리의 생과 죽음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눈에 두드러진다. 한번 죽으면 끝인 생이라고 철떡 같이 믿으며 삶에 대해 정직하게 최선을 다 하는 인물이었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서툰 인물이었다. 루리는 그저 자신의 인생에 아내의 역할만 충실히 해내면 되는 존재였고 그녀의 영혼까지 어루만져 주지 못하였다. 애초에 맞지 않는 부부라는 연을 억지로 끌어다 맞춘 느낌이랄까.
그런 FM 같은 생을 살던 그에게 믿었던 선배의 장난스러운 자살(유서를 본 순간 좀 얼떨떨하면서 헛웃음이 터졌다)은 분노로 터져 나왔고 그러는 사이 아내 루리의 죽음마저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삶이 그를 배신했다는 강렬함은 그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겨우 다잡은 그의 삶에 나타난 루리의 환생은 섬뜩한 분위기로 그를 다시 무너뜨린다.

이렇듯 루리가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루리와 미스미의 재회가 어떻게 그려질는지 그려나가다 가슴이 저려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환생을 통해 사랑을 찾아가는 사이 인생의 반을 손해 보는 이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어쩌면 이것도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가.
환생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빠져 있다가 어린 루리가 던진 복선에 잠시 멈춰 섰다.
'깊이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왜 서글퍼지는 걸까.ㅎ

"사랑의 깊이가 조건이라면, 그 밖에도 다시 태어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많이 있어요." -p.366

영화가 제작되길 기대해본다. 특히 루리임을 확신하는 혀 내밀며 웃는 모습은 귀여움보다는 소름이 먼저 다가와서 독특한 장르가 될듯하다. 섬세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도 대중을 사로잡기에 좋고. 달의 영휴로 나오키 수상작을 처음 만나보았다. 그래서 찾아본 전작들 중 오래전에 영화로만 보았던 철도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의 희미한 기억을 떠안고 책을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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