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웅진 모두의 그림책 6
이적 지음, 김승연 그림 / 웅진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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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쥐던 날, 큰 아이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동화책을 읽어 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할 책을 선택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는데 그때만큼 동화책에 열의를 가져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림 동화책은 무엇보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짧지만 그 여운이 오래간다. 게다가 지나치기 쉬운 책의 표지와 속지까지 곳곳에 그림작가의 숨겨진 여러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묘미이다. 그렇게 선택하였던 단행본들을 여태 간직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펼쳐든 동화책 한 권이 무척 반가웠지만 내용은 묵직하다. 이와 같이 가족 구성원을 둘러싼 이야기 중 죽음이나 치매에 관한 동화책을 몇 권 소장하고 있는데 그 책들을 꺼내보며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책은 가수 이적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 그래서 조금 놀라웠다. 요즘 심심찮게 숨겨둔 끼를 발산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의 음유시인다운 면모를 맘껏 느껴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라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아이의 시선으로 애처롭게 그려내고 있지만 담백한 일러스트가 그 슬픔을 절제하여 덜어내고 있는 듯하다. 마치 이별 앞에 홀로 선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이야기처럼 가슴 한켠에 머문다.

 

 

항상 자신의 공간에서 늘 자리를 지키고 계셨던 할아버지였는데..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뒤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할아버지는 어디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소년의 시선이 머무는 곳곳마다 주인 잃은 할아버지의 물건들과 흔적들은 쓸쓸함과 상실감으로 되돌아온다. 마치 내가 없는 시간에만 나타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혹시나 하여 할아버지의 공간을 들락거려보지만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듯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데요라는 말만 해 주던 어른들 때문일까, 어쩌면 소년은 할아버지가 돌아갔다는 그곳이 어디일지 고민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잠든 시간 소년에게 다가온 깜깜한 밤은 우주였다. 소년의 머릿속은 금세 우주공간으로 가득 찼고 그렇게 머나먼 우주 속에서 혼자 분주하신 할아버지를 보았다. 이곳에서의 일상과 다를 바 없는 모습 그대로~

죽음과 이별 뒤 맞을 수밖에 없는 상실의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이 온량하다. 의식 저 너머이자 아이의 깊은 마음속에 머물러 있을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끈이 될 것이다.

 

 

 

잠시 옛 기억을 꺼내보니 조부모님들 중 나와 삶의 끈으로 잠시나마 연결되었던 분은 외할머니셨다. 하지만 너무 어렸던 걸까. 할머니의 죽음보다 엄마가 통곡하는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나 내 아이들은 조부모님의 존재가 가까이에 있고 그들의 죽음 앞에 충분히 슬픔의 정을 드러낼 것이다. 존재했던 그 무엇들이 사라져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받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이라는 코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는 동화책만 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이들이 다른 이가 읽어주는 책을 들어볼 기회가 잘 없을 것이다. 도서 속에는 이적이 읽어주는 <어느 날>의 미공개 영상이 담겨 있으니 꼭 들어보길. 그림들이 살아움직이는 동안 잔잔하게 퍼지는 이적의 목소리에 그 감흥이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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