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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태생부터 다른 남녀의 차이와 시각의 차이를 부정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회는 그러한 차이를 넘어서 여성에 차별과 편견이 뿌리깊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러한 남성주의의 가부장적 사회에 점차 균열이 일고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목소리로 여성인권이 신장된것은 분명 반가운 현상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사상 첫 여성 대통령까지 보며 여성인권 신장에 한층 더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끝은 암탉이 울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에 보조를 맞추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는 정치적 이슈를 덮어놓고 보더라도 많은 여성들에게 심한 자괴감을 떠안겼다. 아마도 주위에서 이래서 여자는 안돼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을 것이다. 그렇듯 여성을 비하하고 아줌마를 제삼의 성별로 취급하며 유별나게 편을 가르는 이 사회에서 늘 여성은 약자로 피해를 당해왔다. 굳이 페미니즘이라고 분류하지 않았어도 여성차별과 인권유린에 대한 소설들은 많이 쓰여왔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가슴에 한(恨) 한덩어리씩 묵혀두고 사는 여인들의 사연은 충분히 소설의 소재로 대중들의 반응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떠들썩했던 [82년생 김지영]을 향한 여성들의 반응만 보아도 놀라운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여성주의를 표방하며 여성작가 일곱명이 뭉쳤으니 이슈의 주축이었던 조남주를 시작으로 7편의 단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는 그나마 시작에 불과하다. 어쩌면 현남 오빠는 이름 그대로 현실 속 남자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이다. 정말 거짓말 보태지 않고 예전에 알던 남성분하고 아주 흡사해서 소름이 돋았을 정도였다. 사연의 주인공은 자의반 타의 반 그렇게 현남과의 오랜 관계를 유지한다. 현남의 인생에 안성맞춤 여성으로 잘 길들여질뻔하였던 그녀는 서서히 알게되고 드디어 깨닫는다. 자신의 인생이 결혼과 동시에 무덤이 될 수도 있음을. 물론 남성들 시선에서는 반박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현남의 변명도 들어보아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단편에서 말하고자 하는건 그런 상황에 썰물처럼 휩쓸려 버리고 후회의 멍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외침이자 깨우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자식아'라는 마지막 단어에서 느껴지는 울분과 통쾌함이 맞춤 여성을 찾는 남자들을 한 방 먹인듯하여 속이 후련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통쾌함도 잠시 두 번째 소설 [당신의 평화]에서는 목을 죄는 답답함에 미쳐버릴 듯하다. 정말 공감하고 싶지 않은 주제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이 사라져버린 지금 나의 엄마들 세대의 이야기다. 무신경한 남편에 더하여 지독한 남아 사상이 몸에 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 이미 그녀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녀의 삶에 애처로움을 느껴야 하지만 마냥 그럴 수도 없다. 그로 인해 지친 딸 유진의 삶을 다독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당하고 억울했던 상황들은 그녀의 자아를 좀먹듯 갉아먹어버렸고 엉뚱하게도 피해 망상적 증상에 시달린다. 엄마의 주변 모든 상황들에 대한 날선 불만들은 행복해야 할 딸의 인생마저도 발목을 잡는다. 가여운 엄마, 하지만 동시에 이해불가의 엄마, 아무리 달래고 다그쳐보아도 이미 유진의 머릿속에서 엄마라는 이미지는 편안하고 안락한 세상이 아니다. 아무리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지만 비중 있게 드러나지 않았던 남편이 제일 나쁜 놈이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아내의 존재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뒷치닥거리나 하는 사람정도로만 여기는 무신경의 끝판왕이다.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세 번째 단편 [경년]에서 폭발한다. 갱년기 몸뚱이를 각종 약물에 의지하고 있는 중년 여성의 삶부터가 이미 버겁게 느껴지는 이 단편에서는 요즘 청소년들의 성 이야기로 초점이 넘어간다. 중학교 아들의 섹스 스캔들이란 소재도 충격이지만 섹스를 본능 따위로만 치부하고 넘어가려는 모습에서 그 어떤 성적 배려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화나고 슬펐다. 곧 나도 그녀와 비슷한 지점에 도달할 텐데 나라면 어떤 액션을 취할 수 있을까 제일 고민이 많았던 이야기였다.
자궁은 '子宮'이라고 쓴다. 삼십여 년 전, 나는 이 단어를 '아들이 자라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배웠다.
2017년 초등학교 성교육 시간엔 아기집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p.121
그다음 단편들부터는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의미의 확장과 공상과학소설같은 분위기에서 페미니즘과 인간적인 요소를 찾기 위해 작가노트를 뒤적였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라는 단편의 분위기에 조용히 압도되었고 결말의 소름 돋음은 나도 모르게 굳어져 있는 여성 혐오가 존재하지는 않는지 되짚어 보았다. [이방인]은 내겐 좀 난해한 느낌이었다. 남성들의 세계에서는 여성이라는 존재를 이방인으로 설정한 것인지, 그녀가 어떠한 실수를 계기로 이방인이 되어버린 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에서는 남성에 대한 통쾌한 보복전이 펼쳐지지만 그렇게 튀어오른 피들이 내 몸에도 묻은 듯 찝찝함과 불쾌한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마지막 단편 [화성의 아이]가 편하게 다가온 이유도 남성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물과 무생물이 공존하며 새생명을 돌보며 함께 생활을 만들어 내는 세상이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이 폐허가 더 이상 냉혹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가 생활이라는 리듬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p.267
여전히 주변을 돌아보면 현남오빠가 많고 남편과 아들을 떠받드느라 생을 다 바치는 여인들도 많다.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여성은 불리한점 투성이고 직장에서 차별대우 또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대간의 충돌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게다가 연이어 터지는 성추행과 성폭력은 드러나지 않은 것들까지 계산한다면 훨씬 많을 것이다. 잘난 여성들 때문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남자들, 게다가 빗나간 여성 혐오주의까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와 그리고 넘어야 할 고개가 수도 없음을 느낄 것이다. 이런 소설을 들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띄우며 질타하고 싸우자는 게 아님을 잘 알 것이다. 조금만 더 나와 가까운 이야기로 여기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회로 바뀌어가길 원하는 것이다. 나부터라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지워내고 주체적인 생각을 설파해야겠다.
그나저나 표지를 한참 들여다보다 우측 사인의 영문 ←TO T 뒤는 무슨 글자가 가려진 것일까 나름 고민했다. 여성의 삶을 정중앙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는 의도에 맞추어 TO THE FUTURE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