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맛 - 로제 그르니에가 펼쳐 보이는 문학의 세계
로제 그르니에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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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또 어떤 맛으로 다가올까 하는 기대감은 서른한 가지 맛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아이스크림 맛만큼이나 설렘을 준다.

서점, 도서관, 심지어 책장에서 아직 읽지 못한 몇 권의 책들을 바라볼 때면 늘 겪는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이 책의 제목 하나만큼은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독서의 깊이감이 그냥 물웅덩이 수준이라 책안에서 작가가 불러낸 수많은 프랑스 작가들이 낯설기 그지없었지만 그들과 함께 동시대를 산 이 로제 그르니에의 폭넓은 시각에 믿음이 더해지고 더불어 읽고 이해하고 쓰는 이 모든 행위, 즉 책에 대한 여러 견해에 마음이 기울어졌다.

읽지 않은 책이 없고 모르는 작가가 없을 정도로 책에 대해서라면 지칠 줄 몰랐던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는 로제 그르니에는 백세 인생의 길로 가고 계신 노장작가이다. 물론 처음 알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고 알베르 카뮈의 추천으로 기자 생활을 거치며 거의 7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신 분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경력이지 않은가. 그런 그가 들려주는 아홉 가지 소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나의 오감 곳곳에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먼저 문학과 사회 뉴스들의 상관관계에 대한 견해에서는 미디어의 부정적인 측면을 꼬집지만 반면 그러한 사회 뉴스들이 문학의 소재가 되어 작가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을 부정할 수 없다. 비록 각종 뉴스나 미디어들로 인해 진정성을 놓치기도 하지만 그러한 기사 거리들이 작가에 의해 상상력에 날개를 달고 무한한 세계를 연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잘 짜인 이야기에서 삶의 질서와 철학을 찾는 즐거움을 누린다.

문학작품이 그리는 기다림이라는 주제는 다른 어떤 주제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시간의 연장선인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다양한 상황과 각도에서 해석함에 따라 인생에 있어 기다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은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말한다.  특히 독서에서의 기다림은 가장 으뜸 행위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이 모든 책들...
나에게는 독서야말로 기다림과 분리될 수 없는 으뜸 행위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눈은 글자를 따라 나아가고,
정신은 더 멀리에서 일어날 일을 알고 싶어 안달하며 눈이 나아가길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려야만 한다.

사생활 편에서는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겠다. 최근 미디어의 급성장과 더불어 독자들은 작가와 사생활에 대해 조금은 오픈되길 원한다. 때론 작가의 이념이나 생활들이 소설과 얼마나 밀접한지 연관 지어 보려는 이들도 있다. 작가의 사생활이나 가치관이 충분히 반영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우리는 작가가 잘 만들어 놓은 또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작가의 사생활은 그들만의 것으로 지켜지고 보호받아야 한다.

기억 자체가 이미 소설가이다. 이제 우리는 저장 장치가 아니라 과거를 끊임없이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억은 재생하기보다는 지어낸다.
기억은 역동적이며, 우리의 상상을, 우리의 개성을, 우리의 열정을, 우리의 상처를 먹고 자란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며, 작가에게는 더더욱 사실이다. -p.107
읽기는 더도 말고 적어도 글 쓰는 일만큼이나 사생활에 속하는 행위이다.
책 한 권 들고 혼자가 되는 시간,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페이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참으로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을 문득 이해할 것만 같다.
한편의 허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현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p.120

 

그렇게 읽어내려가다 어느 한 구절에서 또 멈춰버렸다.
"그렇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불행 중 다행일 뿐이다. 진짜 불행은 종종 느닷없이 죽는다는 데 있다." -p.177

이 문장을 맞닥뜨렸을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연예인 기사가 터진 뒤였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아도 뒤숭숭하고 우울감이 감싸고 있던 저녁시간에 이 한 문장에 마음 한구석이 또 비워졌다.

이외에도 저자의 책에 관한 넘치는 지식은 사랑, 장편과 단편, 미완성작 그리고 글쓰기 등으로 풀어 보이고 있다. 그 작품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마치 유명인을 친구로 둔 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흥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더욱 가까이에서 작품과 호흡해 볼 수 있는 듯하다.

아직은 글쓰기에 대한 욕구보다 책 속에서 노니는 일이 더 즐겁기에 더 많은 문학 작품을 통해 진정 책의 맛을 알아가고 싶다. 시간이 지나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정리해보고 내 나름의 맛의 분류 표를 그려내 볼 그날도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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