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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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또 뭐지? 하며 시선을 잡아끈 건 표지였다. 4권이 합체해야 한 단어가 보이는 독창적인 디자인에 홀로그램까지 덧입혀 입체감과 세련미를 더했으니 장르를 떠나 소장 욕구부터 분출하였다. 하지만 스릴러와 추리물에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는 편독가이기에 나에게 이 책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시리즈였다.
그러나 그러한 편독을 깨고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평소 원작 영화를 즐겨본다는 이유가 작용하였다. 그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증 받은 내용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다소 자극적이고 적응하기 힘든 소재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발동하는 건 당연했다.

책의 저자는 스웨덴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잘 몰랐던 스웨덴의 이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스웨덴 작가라면 프레드릭 베크만이 친근하고  최근에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라곰과 그들의 교육 등에 관련된 책만 보았기에 이 책의 소재와 배경은 또 다른 낯설음이었다.

애초 10권으로 기획된 밀레니엄 시리즈는 3권까지가 그의 작품이다. 2005년 스웨덴에서 출간하여 9천만 부 이상이 팔린 인기작이었지만 작가는 그 인기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2004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사후에 출간된 책이란 소리다. 그렇게 중단되었던 시리즈는 여러 진통 끝에 드디어 네 번째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물론 스티그 라르손이 아닌 다른 작가가 이어받았다. 그래서 전 시리즈의 인기를 덧입고 이번 출간과 더불어 전권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밀레니엄 시리즈에 빠져보기 위해 1권을 만났다.



 

 

먼저 저자의 짧은 약력을 읽어보니 그의 인생과 미카엘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닮아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사회고발지를 창간하여 사회정의를 위해 신념을 다한다는 점이 주인공 미카엘에게로 그대로 옮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시작은 미카엘이 위기를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언론인으로 기업 비리를 고발하다 유죄를 선고받으며 명예가 땅에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그 틈새를 노리고 또 다른 거대 기업의 오너인 방에르 회장이 그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이유인즉 방에르 일가에서 발생한 의문의 실종사건을 재수사해 줄 것을 의뢰받음과 동시에 떨어진 위신을 회복할 카드까지 제시하며 그를 유혹한다. 유혹의 손길이 워낙에 거세었기에 밀레니엄 잡지사의 동업자이자 섹스 파트너인 에리카의 적극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에르 일가의 소굴로 들어간다.

애초부터 들쑤셔봐도 더는 나올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은 미카엘의 촉수가 자동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고 또 다른 사건의 이면이 찬찬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추리소설이 그렇듯 이때부터는 책의 두께감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실종이냐, 살해냐를 두고 기자와 독자들은 쉼 없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단서들에서 느껴지는 공포감과 섬뜩함까지 함께 떠안은 채 말이다.

물론 그 혼자 그 모든 걸 파헤치지 않는다. 그와 함께 할 파트너는 리스베트란 인물로 등장부터 심상찮다. 어린 시절 따라다니던 불운의 그림자는 그녀를 삐딱하게 만들었다. 결국 사회가 그녀에게 내린 평가는 냉정했고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야 되는 후견제도 안에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 사실을 통해 독자는 스웨덴의 후견제도에 관한 문제점을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해킹 능력과 사진캡처 능력은 그녀를 여전사로 만들며 독자들에게 신비감과 쾌감을 안겨준다. 그녀에 관한 묘사 장면을 상상 속에 담아놓고 영화 포스터를 본 순간 루니 마라가 대단한 배우임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그녀의 활약상이 무척 돋보이며 마지막에서 결정적인 한방도 날리게 된다.

하지만 적당한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등을 돌린듯했던 세상 속에서 믿음과 신뢰를 얻음으로써 미카엘에 대해 감정의 변화가 생긴 리스베트는 에리카에게 야릇한 질투심도 느낀다. 그러나 에리카와 미카엘의 이해불가한 관계나 뜬금없는 섹스신은 아직 내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사건을 파헤치면서 드러나는 기업가의 경영 다툼과 비리, 추잡함, 그리고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여성 혐오는 가히 충격적이다. 확실히 여성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소설은 여전히 불편하다. 예전에 보았던 미드에서도 창녀들만 골라 잔인하게 살해하던 연쇄 살인마 이야기를 본적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에 느꼈던 그 불편하고 무서운 감정을 이 소설에서 다시 접하자니 몸서리쳐졌고 잔인한 묘사에서는 자꾸 걸려 넘어졌다. 

그래도 치밀하게 짜인 구성을 바탕으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스릴 넘치며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범인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우리는 인간의 이중성 아래 깔려있는 잔혹함은 대체 그 끝이 어디인지 심각해지게 된다. 그래서 미카엘(남성)과 리스베트(여성)가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되는 장면에서는 미카엘보다 리스베트의 의견에 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시발점은 나치즘이었다. 과거 역사 속 스웨덴은 나치 독일에 협력한 부역 국가였다. 하지만 복지국가라는 타이틀 뒤에서 네오 나치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접하고서는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패션처럼 나치즘 따위가 유행같이 돌고 있는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지금은 남녀평등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예전의 스웨덴 사회는 여성에게 엄격한 나라였다. 산업화가 되면서 여권이 신장하기는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여성인권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결과에 대한 기다림을 못 견뎌 두께와 무게감 따위는 불평거리조차 될 수 없었다. 그것이 추리소설의 매력 아니겠는가. 나치에서 시작하여 여성 증오범죄로 오랜 시간 동안 숨겨져왔던 방에르 일가의 비밀이 파헤쳐 지기까지 쉴 틈 없이 달려나가보길 바란다. 유럽 쪽 지명이나 이름이 낯설다면 인물의 관계도를 그려보는 것도 추천한다. 앞쪽에 지도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도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밀레니엄 1권을 통해 내가 받은 느낌이라면 기승전결은 확실하나 권선징악은 애매모호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렇게 통쾌감은 덜 하다. 그렇지만 내게 추리소설은 자극적인 매운맛이다. 그래서 맵지만 그 자극적인 맛에 곧 2권을 펼쳐들 것 같다. 2권에서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그녀가 더 궁금해서 만나보고 싶어졌다.

 

 "기억해둬, 내가 미친년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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