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 빼앗긴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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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2권에서는 빼앗긴 후 아직 제자리를 찾아오지 못한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국제사회의 기본 도덕률로 자리 잡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강대국이나 대영박물관들의 변명에 그 어떠한 해답도 못 내놓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변명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 가치를 잘 모르고 박물관에 모셔놓지 않았다면 유물들의 존재 유무를 장담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강대국들의 문화재 복원기술과 문화재 보호를 위한 그들의 노력은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비록 자국의 유산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박물관들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을 자국의 문화유산인 것처럼 귀하게 여긴다. 전시 약탈은 인류가 저질러온 악행 중의 하나였다. 닥치는 대로 쓸어모은 데는 그것들의 상징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귀해 보이거나 뛰어나 보이는 예술품들은 무조건 약탈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문화재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각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인류가 남긴 가치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하겠다. 하지만 약소국들의 경제력이나 문화재 보호 능력이 회복되었다면 자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래도 돌아온 유산보다는 빼앗긴 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유산이 더 많을 것이다. 2권에서는 약탈당한 문화재를 성격에 따라 분류해 놓았는데 재왕들의 탐욕에 짓밟힌 문화재와 1권에서도 언급되었던 제국주의 시대 때 희생된 유산과 전리품으로 흩어진 유산들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빼앗긴 우리 문화재 중 몽유도원도에 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전시 약탈물로는 최초였다. 세계에서 가장 일찍 약탈당한 문화재이면서 가장 먼 길을 돌아 프랑스에 도착하였다. 심지어 엘람 왕국의 왕에게 약탈당한 뒤 법전의 일부가 지워지고 왕의 업적이 쓰이게 되었는데 그만큼 약탈물들은 국가의 권위와 위상을 드높이는데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예상대로 문화재를 반환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자신들이 구출해서 보호하고 있다는 주장을 싸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데다 루브르 박물관의 얼굴로 대표되고 있는 만큼 쉽게 내어줄 리가 없을듯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의 여신 비너스 중 <크니도스 비너스>는 비너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처음 그리스의 작은 섬 코스의 주민들은 제작을 의뢰할 당시 옷을 입은 것과 나체의 모습 두 가지를 요청하였다고 한다. 결국 주민들은 옷을 입은 여신을 선택하였고 나체의 비너스는 크니도스 주민들이 가져가서 전시해놓았는데 오히려 나체의 비너스의 인기가 치솟았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복제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크니도스의 비너스의 원본은 소실되고 그 이후 <밀로의 비너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부서지고 잘려나가긴 하였지만 불분명한 출처로 인해 학술적 가치보다도 미적가치가 더 인기를 얻은 경우라고 한다.

 

 

 

제국주의에 희생된 유산 중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이 있다. 아마 워낙에 유명해서 이 사진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세계 제일의 미녀라고 칭송될 만큼 그 미적 가치가 높은 작품인데 네페르티티라는 이름 자체가 '미인의 출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떠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공주였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그녀가 왕권까지 누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독일 발굴팀은 이 흉상을 반출하기까지 과정도 필사적이었다고 한다. 무려 10년의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한쪽 눈알이 원래 없는 채로 제작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에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이 흉상 외에도 돌려받지 못한 유산이 많다. 강대국들의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을 언제까지 고수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구는 당연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걸작 예술품들이 전리품으로 흩어진 작품들 중 <하나님의 어린 양>은 유물이 옮겨 다닌 과정들 또한 복잡하지만 흩어지고 모아지는 과정에서 결국 한 작품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겐트 지방의 성 바봉성당의 제단화로 유명한 이 작품은 매각, 도난, 약탈, 복제 등의 아픔의 역사를 지닌 작품이다. 벨기에는 우여곡절 끝에 12점 모두를 재결합시키는데 성공하지만 그중 두 개를 또 도난당한다. 그 후 세례 오한의 그림은 반환되었지만 정의로운 심판관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갖가지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의로운 심판관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작품 중 히틀러가 가장 집착했던 작품으로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작품이 있다. 히틀러가 화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데 그는 아리아 민족의 특질을 반영하는 예술품에 특히 집착하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약탈물들을 모아 총통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로 유럽의 문화중심지를 꿈꾸었다고 한다. 협박과 강압으로 빼앗은 문화재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코 탈취할 수 없었던 그림이 화가의 아틀리에였다. 히틀러의 현대예술에 대한 탄압과 몰수 중에 샤갈, 피카소, 마티스, 반 고흐 같은 현대 거장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이 소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외 다수의 유산에 얽힌 사연 외에 우리의 문화유산 <몽유도원도>에 관한 역사는 지나칠수 없을것이다.  몽유도원도의 탄생 과정과 그 유산에 깃든 중요한 가치를 먼저 알고 나면 지금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인다. 어떻게 일본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는지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여러 일본인들의 손을 거치며 일본 문화재로 등극하기까지 대한민국은 어떠한 대비도 할 수 없었음이 안타까웠다. 여전히 그림의 반환 가능성을 놓고 두나라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일본이 순순히 내어줄리는 없을 듯하다. 그만큼 몽유도원도는 막대한 가치를 지닌 유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그 자리를 복제품이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단념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한 책만을 접하다 문화유산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척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다. 책표지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융성한 국가의 뒷모습에는 전시 약탈의 흔적이 생생함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예전에 로마시대 콜로세움에 관한 다큐를 보면서 그 웅장함을 뒤로하고 약탈의 흔적만 남아있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몇 달 전 읽은 일본 여류작가의 여정기를 담은 책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그녀가 내놓은 견해가 생각이 났다. 런던 박물관은 멋집니다. 큰 목소리로 말할 순 없지만 잘도 세계 각국에서 큰 도둑질을 했구나 싶습니다. - [도쿄에서 파리까지 삼등여행기 중]

여행을 자주 떠나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대영박물관에서 각 나라의 유산을 모두 구경할 수 있다는점도 매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산은 유산이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빛을 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류가 조금은 욕심을 덜어내고 문화재의 진정한 의미에 좀 더 치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세계문화유산들의 역사를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약탈을 금지하는 이유는 사유재산, 또는 종교적, 예술적 성격의 재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유산이며, 또한 인류의 공동 유산이므로 약탈되어서는 안 되며, 약탈되면 반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랜 역사와 관행을 지난 전시 약탈의 합법성은 약탈 문화재 반환의 원칙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되었다.-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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