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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8월
평점 :

늦은 밤, 어느새 매미는 귀뚜라미와 바톤터치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한철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프기도 하다.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뜨거운 여름의 기운과 맞서다 보니 몸의 기운도 빠져나가서 요즘은 몸도 마음도 최대한 느슨하게 놓아두고 있다. 바뀌는 계절의 온도 변화에 맞추어 나의 정서적 감각에도 신경을 쓸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감성 에세이집을 펼쳤다. 이 책은 헤세의 책과 어느 정도 연장선에 있는 듯한 느낌의 책으로 상당히 인상 깊은 문체에 매료되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독보적인 감각들은 이런 에세이집에서 많은 걸 토해낸다. 감성을 그려내고, 자연을 표현하고, 옛것을 추억하고, 사랑을 담아내고, 거기다 극적인 상상의 세계까지 더하고 있다. 그러한 문체에 젖어들기에 지금 시기가 참으로 적절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가, 책장을 더디게 넘겨가며 보았다. 그렇게 며칠을 붙잡고 있다 보니 어느새 가을 냄새가 더 가까이 와 있다.
독일 작가 안톤 슈낙은 나에겐 낯선 이름이다. 교과서에도 그의 글이 실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국어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문학도도 아니여서 그런가 기억이 없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많은 감성들을 끄집어 내보았다. 살아있는 문체들이 한편의 그림이 되고 영상이 되고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그를 둘러싼 자연 환경속에서의 어린 시절과 추억, 그리고 그가 느꼈던 감성들을 함께 느껴보는 일이 즐거웠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타이틀은 주변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고 변화하는 모든 것들에서 시선을 두게끔 한다. 작가가 슬프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보며 내가 슬프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기도 하였고 프랑켄의 꽃동산과 건조 예찬에서의 그의 문체에 질투심이 일기도 하였다. 차가운 풀밭에 누워본 사람만이 이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만의 문체로 꽃동산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그래서인가 이 부분은 필사도 해 보았다. 또한 계절을 묘사한 부분은 한편의 시를 읽는 듯 여러번 되뇌여 보기도 하였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슬픔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잘 대처함으로써 다른 감정들이 긍정의 기운을 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전쟁을 지나오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래서인가 친구들을 추억하는 곳에선 전쟁의 트라우마가 느껴지기도 하였고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담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그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마주하는듯하였다. 그러나 작가의 어린 시절은 그 누구보다 다채로워 보인다. 익숙한 냄새와 소리 등에 반응하며 작가를 다시 그 시절 고향의 품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사건들과 그의 개구쟁이 같은 면모를 만나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상상력과 모험심에 불타는 열정도 느껴진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글들은 그에게도 양분이었듯이 현재에는 글쓰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양분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책을 덮고 어제는 영화관으로 향하였다. 아무래도 가을의 문턱에 상영되고 있는 [더 테이블] 은 나의 이러한 감성에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대형 스크린 속에서 보는 익숙한 풍경들과 무심히 지나는 물건들, 그리고 인물의 실루엣 등에 시선을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묘사를 해 나가기도 하였다. 가을의 감성에 젖어 아름다운 문체를 만끽하고 싶다면 안톤 슈낙의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나를 슬프게 했던 기억들을 찾아가다보면 어느새 추억에 젖어 있지 않을까..
내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아지랑이가 일더니 꿈과 공상의 불을 붙였고, 수수께끼처럼 아롱아롱하는 언어를 내게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이 언어에 괴팍스런 자부심과 리듬을 붙여가며 끝없이 독백을 이어갔던 것이다.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