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9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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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과연 일제 시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도 학창시절 가장 열심히 배우고 익혔던 시대로는 조선시대를 꼽을 수 있을 것이고 그다음으로 일제시대가 아닐까 한다. 일제의 잔인하고도 비인도적인 행위에 쓰러져간 민족의 혼에 함께 아파할 것이고 또는 너무 끔찍해서 외면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서대문형무소를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처럼 말이다.

역사 책을 읽다 보면 때론 이것이 정말로 실화일까 의심을 품을 때가 있다.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행태에 인간의 도덕적인 기준들이 무너져 가는 과정과 전쟁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광기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그래서 전쟁에 관한 기록물이나 증언집, 또는 사진자료 등을 찾아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 내용들의 강도가 너무나 셀 경우엔 어김없이 그날 밤은 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더구나 그 시대를 겪은 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여전히 그러한 역사가 낯설기만 하였다. 문명이 타임머신을 타 버린 듯한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내 의식 어딘가 피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것도 저자가 말하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인가? 그러고 보니 한동안 그랬던 것 같다. 초등시절 독립기념관에서 보았던 독립투사들의 고문 장면은 그 당시 꽤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더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나 보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교육엔 일제 강점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스스로를 지지하고 격려하게 만드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그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피해만 주구장창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는 이렇게 식민지배를 받지 않게끔 제시하는 내용도 없다. 하지만 최근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꾸준한 흥행세는 조금 더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이들에게 시대적 궁금증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더욱 일제시대에 관해 불을 지피게 된 건 지난 정권 위안부 합의 문제와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친일파 문제,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막말을 일삼는 아베 정권과 우익세력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커져 감에 따라 역사 공부에 대한 필요성도 커져가고 있다.

 

 

여태껏 읽어왔던 일제시대의 내용들은 전반적인 흐름과 굵직한 사건들 위주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일제 강점 실록은 일제시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많은 사실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일제시대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섭렵하고 싶은 역사 초심자들에는 딱 알맞은 책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구성과 흥미 위주의 역사 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뒤를 이은 [일제강점실록]은 그 시리즈를 완결판이다. 일제 강점시대를 서술하기에 그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많은 사건과 인물에 관한 정보는 충분히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적인 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려 노력하였고 우리가 알아야 할 주요 사건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까지 10년 단위로 담아내고 있다.

1870년대 개항기부터 1940년대 민족 분단까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연도별로 발생한 사건을 흐름별로 정리해 볼 수 있어서 기억을 돕는다. 제일 먼저 그 당시의 전반적인 세계정세를 살펴보며 국내외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알아가게 된다. 그러한 사건과 연이어 발생한 항일 투쟁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을 건 행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함께 애국심에 고취되다가도 그들의 안타까운 마지막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일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불철주야 뛰어다니던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영면의 시간을 맞았다. -p.322

그리고 당시의 일본 통감들을 세세하게 다루며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아서 새로웠고 무엇보다 친일파들의 행적을 돌아봄으로써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친일파 문제에서만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며칠 전 본 기사에 이완용의 별명이 현금왕이었다는 내용과 함께 후손들은 그렇게 배불린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사실에 격분하였는데 이 책의 말미에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대략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완용 외 을사오적과 경술국적등 매국에 앞장선 이름들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왜 그 당시 일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는지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며 앞으로는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이야깃 거리도 있다. 대표적으로 수천 명의 한국인 독립군단이 러시아군에 의해 와해된 자유시 참변은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사건일 것이다. 많은 독립군의 인명 손실에 안타까운 마음에 더욱 꼼꼼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 일제의 허위 사건과 보도는 늘 있었지만 그중에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공격한 완바오산(만보산)사건은 우리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기억된 사건으로 일제의 잔악함에 치를 떨다가 잠시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기사를 낸 김이삼기자의 피살만큼 쓰라린 사건이었다. 제주 해녀들의 경찰 주재소 습격 사건 또한 낯선 이야기로 다른 역사서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내용이라 흥미롭게 다가왔다.

일제시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턱대고 읽다 보면 활자만 읽어 나가는 실수도 범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한민족을 억압하기 시작한 시점과 그렇게 저항의 세월로 피눈물을 흘렸던 역사에서 일제의 통치가 어떻게 변모하였고 우리의 저항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강점기가 길어질수록 민족의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조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반의 3.1운동과 저항운동의 처절함은 30년대 후반이 되면서 점차 달라지는데 변절자가 늘어나고 독립 지도자들 사이에서의 내분이 점차 증가하는 이유만 보아도 지배를 받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독립의지의 흔들림도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년대 말 임시정부의 힘든 피란살이에서도 안창호와 이동녕의 독립운동 정신은 현재 이러한 지도자가 필요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안창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했고,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쓴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도 입원비조차 없어 김성수와 윤치호, 이광수 등이 돈을 마련해야 했다. -p.322

이동녕은 20여 년 동안 임시정부를 지켰고, 일할 사람이 없을 땐 자신이 앞서서 일하고 일할 사람이 나타나면 항상 뒤에 물러서서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옳지 않은 일엔 단호했고, 독립을 위한 일이면 사익을 앞세우지 않았으며, 권력과 자리에 욕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숱한 인물들이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할 때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임시정부의 수호신으로 남았다. 덕분에 임시정부는 해외와 국내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최후의 보루로 남을 수 있었다. -p.329

정권이 교체되고 처음 맞는 광복 72주년, 그 의미가 으찌나 남달랐던지 눈 뜨자마자 채널을 찾았고 이제야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오고 있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독립에 기여했던 모든 분들에게 그 영광이 돌아가고 친일파에 대한 정리와 함께 남은 과제를 잘 해결해 나가는 길이야말로 수치와 고난의 역사로만 기억되었던 일제 강점 시대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 거의 유일하게 단일민족 국가를 고수해온 한국과 일본이 함께 해결해야 할 역사적 숙제는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국민들이 함께 이루어가야 할 몫이고 그 해답은 한 권의 책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제는 위안부에 대해 막말을 하던 국회의원 기사에 화가 치밀었고 어제는 군함도 강제징용자 할아버지의 인터뷰 중 한마디에 가슴이 저려왔다.  "군함도에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들은 전부 한국으로 보내졌다. 일본이 그거 하나는 착하게 잘했다"  무엇보다 착하게라는 단어에 숨겨진 의미를 아마 짐작할 것이다. 괜시리 광복절날 퍼부어대던 빗소리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희생되신 분들의 넋을 위로해 보았다.

역사란 거창한 것도 숭고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 낸 개인들의 삶이 물이 되어 개천을 이루고, 그 개천들이 다시 뭉쳐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오늘의 연속이 곧 역사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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