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입추는 지났지만 여름은 아직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다들 어젯밤엔 자 알~주무셨냐는 말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이번 여름은 정말 그 열기가 대단하다. 이른 아침, 매미의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이놈의 매미가 침실 베란다 창문 옆에 바짝 붙어서 울고 있다. 어차피 달아난 잠을 다시 청하고픈 맘은 사라지고 자연스레 어제 읽던 책을 집어 든다. 불혹의 나이가 되고서야 이처럼 책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그 일상의 만병통치약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탐독가나 지식 전달자들처럼 책의 맛에 빠져든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올해 들어 읽기 시작한 고전 읽기는 지금 제자리걸음이다. 유시민처럼 어려서부터 읽는 일에 매진한 적도 없고 문학도나 사회학도도 아니었다. 단지 간간이 시간 나고 필요하다 싶을 때만 찾아보는 정도였기에 삶의 연륜에 비례해서 독서의 연륜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름 꽤나 알려진 지식가들의 추천도서를 소화할만한 지적 능력은 여전히 모자람을 느낀다.

『청춘의 독서』 이전에 보았던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 비해 유시민의 청춘을 함께한 도서들은 내겐 좀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정치에 몸담았던 이력과 언론에 비친 그를 잘 안다면 이유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가 자연스럽게 만난 청춘의 도서들이 나에겐 죄다 낯설다. 여러 권의 책들 중 러시아 문호들은 반갑게 읽힐 듯한데 이전에 읽은 『잡담의 인문학』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책에서 짧게 나마 저자들에 대한 단편 지식을 습득한 점이 도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중화권 서적은 도통 관심이 없다 보니 무지 수준이다. 이것 또한 나의 독서 편력 탓인데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친절하게도 유시민의 리뷰에는 저자의 생각뿐 아니라 작가들의 삶의 이야기도 덧붙여 놓아 이해를 돕니다. 소설을 읽기 이전에 그 시대와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면 한층 고전이란 무게감이 덜어지듯이 그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줄 세워 볼 수 있을 듯하다.
맨 먼저 등장하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극한의 고통을 맛보기도 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러한 시대의 좌절과 고통은 그의 작품에 여러 인물들로 대변되었고 소외당한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깊이 있는 통찰은 그를 영혼을 지닌 소설가로 추앙받게 하였다.  『죄와 벌』에서 던지고 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세기를 거치면서 그 답을 어느 정도 제시하기는 하였지만 과거를 돌아보며 체제의 깊이감을 이해하고 더불어 사회문제와 결부시켜 그 폭을 넓혀볼 수 있을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보다 극단적이고 허무한 죽음이 어처구니없었던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삶에서 그보다 더 안타까웠던 점으로 체제에 갇혀 푸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세월과 그의 죽음을 뒤로하고 뻔뻔하게 살다간 세 사람의 이야기가 더 시선을 끈다. 그럼으로써 그의 저서 『대위의 딸』은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인즉 시대의 메시지들이 강렬한 소설은 그만큼 흥미롭게 읽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사회 공부에 한 획을 그은 러시아 작가들의 삶은 대체적으로 험난하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그러한 인물 중의 하나지만 용기 있는 작가의 전형으로 진취적인 액션 취했기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로 역사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짧게 소개된 단락 중 슈호프가 국 두 그릇을 해치우는 장면을 묘사한 내용은 읽는 내내 음식이 주는 경이로움이 느껴지기까지 하니 앞으로 국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대목이 될 듯하고 벽돌을 쌓는 노동의 순간이 사뭇 어찌나 진지한지 그가 수용소가 아닌 숙련된 장인같이 느껴져서 유시민의 말처럼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주는 빛이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했다.

독일의 소설가 아인리히 뵐은 한동안 아일랜드에 빠져있을 때 『아일랜드의 일기』라는 책으로 그를 처음 알았고 그렇게 그의 문체에 매료되어 처녀작 『열차는 정확했다』 두 권의 작품만 읽어보았었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된 그는 내가 알고 있던 느낌과는 다르게 강렬했고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정치와 언론의 부정부패를 대변하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강한 끌림을 주었다. 아마 지난해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에 눈을 뜨고 있었던 독자라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쳐 들것이다.

작년부터 틈틈이 내가 본 역사서적 중에 유시민 님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으며 거꾸로 책에도 언급되었던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미 책장을 장식하고 있은지 좀 되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한 채 뒷전으로 밀려났기도 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다독임을 위로 삼아 이제는 펼쳐볼 수 있을 것 같다.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통찰을 던져주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지금의 유시민이란 사람을 만들어 준 책이 아닐까 한다.  체제의 바람에도 흔들림 없던 리영희의 신념과 지조는 많은 지식인들에게 울림이 되었을 것이고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사람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줄 것이다.
체제와 이념,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혁명의 바람과 함께 시대를 지나온 유시민님의 사회학도다운 독서 목록인  『공산당선언』,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맹자』, 『사기』는 그가 추천하는 반면 쉽게 읽히지는 않을 듯하다. 오히려 인류와 인간에 대한 물음으로 출발할 수 있는 『인구론』, 『종의 기원』은 지난해 읽었던 『호모 사피엔스』의 기류를 타고 읽어보고픈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그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면 잘 읽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윈 만큼씩만 인간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이타 주의에 공감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p.225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 있다. 누군가의 책장이 궁금하고 다독에 대한 열의에 빠진다. 또한 다른 이의 넘쳐나는 책장을 부러워하며 책에 대한 욕심도 가져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과연 얼마일까를 계산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식에 대한 막연한 동경, 지식의 양이 양팔 저울로 가늠할 수 있을 것 마냥 다른 이와 경쟁하듯 그러한 어리석은 집념을 잠깐 동안 가져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됨을 알게 되었다.
한창이었던 나의 이십 대와의 전혀 다른 노선을 살았던 유시민의 청춘을 들여다보며 삶의 길은 달랐지만 결국 생각의 길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그의 청춘을 함께한 책장을 즐겁게 구경하였다. 그의 말처럼 축척된 삶의 경험이 제공하는 성찰의 능력이 부족하여 선뜻 읽어지지 않는 책들도 많지만 나는 그냥 나답게 사색의 시간을 즐겨야겠다. 고전이 던지는 물음을 즐기면서 말이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더 채워야 할는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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