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의 인문학
토머스 W. 호지킨슨 & 휴버트 반 덴 베르그 지음, 박홍경 옮김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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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의 인문학이라고 해서 인문학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들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펼쳐보니 그게 아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읽다 점점 읽는 속도가 뎌더졌다. 지루해서가 아니라 인물들을 검색하고 찾아보고 또 연관된 소설이나 작품들을 찾아보느라 진도가 더디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공부하는 학생처럼 일일이 책 귀퉁이에 낙서도 해가면서 말이다. 아마 내가 읽은 책 중에 포스트잇이 제일 많이 붙여진 책일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어떻게 이렇게 각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아 흥미롭게 묶어놓았는지 일일이 분석해놓은 저자들의 재주가 놀라웠고 그리고 첫 장의 인물과 마지막 장의 인물의 연결고리를 발견한 순간 그 놀라움은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색인을 보는듯하지만 각 인물들의 특출났던 부분을 부각시켜 놓음으로써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 해당인물들을 한 번쯤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게끔 유도한다. 그러나 문제는 난해한 인물들이 많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평소 다독을 통해 지식이 많거나 아니면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손뼉 치며 쪽쪽 흡수가 가능하겠지만 나처럼 처음 듣는 인물들이 더 많은 독자들은 과연 내가 이들을 대화의 장에서 거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만 남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사람 이름만 생각하려고 하면 미친 듯이 떠오르지 않는 내 상태를 감안한다면 잡담보다는 다른 책과의 연결고리를 찾았다는 점이 더 유익하였다. 그래서 내겐 더 좋았던 책이다.

책에 나온 인물들은 그 세기를 거치고 문학뿐 아니라 역사에서 그 이름을 당당히 남기고 간 사람들이다. 책 중에도 잠깐 그러한 부분이 나오긴 하지만 문인이라면 지녀야 할 핵심 요건이라도 되는 양 불우한 어린 시절과 더불어 하나같이 그들의 삶은 극단적일까. 평범함을 거부한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자존감과 자의식이 강했던 건지 도덕적인 삶을 거부한 이들, 그리고 세상에 녹아내리지 못하고 미치거나 자살한 이들, 특출난 자들은 뭐가 이리 삶도 별난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목차만 보아도 그들의 삶은 꽤나 흥미로웠다.

 

 

 

인물의 다양성은 작가나 화가에 그치지 않고 미술품 수집가, 건축가, 혁명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들로 두 페이지에 서술하고 있는 분량만으로는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 인물들의 주제(?) 적 느낌은 어느 정도 전달이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극찬한(지구에 사는 즐거움을 진정으로 배가시켜 준 인물) 수필가 몽테뉴의 글이 궁금해서 꼭 찾아보아야지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선 좀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소설이 장황해서 현기증이 난다는 표현에서 그녀의 소설을 다시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일게 했다.

그리고 어느 책이든 말의 어원이나 유래는 그 즐거움이 배가 되게 되는데 (차라리 이런 것들이 대화에서 더 아는체하기 좋은 소재들이 아닐까 한다.) 기원전 7~6세기를 산 시인 사포에 대한 이야기 중 레즈비언에 대한 어원과 BC 287~212년경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에 대한 유래, 1920~1993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페리니의 일화 중 파파라치의 유래, 그리고 소설가 시어도어 드라이저가 1912년 타이타닉호에 승선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돈을 아끼기 위해 다른 배로 갈아타 수장될 위기를 모면했다는 뒷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타이타닉에 관한 인물은 거의 뒤쪽에 있긴 하지만 첫 장에서 그 연관 관계를 또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로운가 보다. 책을 다시 펼쳐보면 또 다른 짝을 찾아낼 수 있다. 첫 장을 열고 있는 페기 구겐하임은 타이타닉 호의 침몰(신사답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브랜디와 시가를 달라던 노신사가 바로 그이다.)로 사망한 벤저민 구겐하임의 둘째 딸로 그녀의 다큐영화도 나와 있으니 찾아보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게다가 파티걸이었던 그녀 주위엔 당대 잘 나가던 인물들이 수두룩했기에 여러 인물들과의 인물도도 꽤나 흥미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 본 미술사 책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이 영향을 받았다던 일본 작가의 이야기가 잠깐 언급된 적이 있었는데 가츠시카 호쿠사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삶과 작품은 기억 속에 오래 머물 듯하다.

이미 귀에 익은 작가들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는데 도스토옙스키도 수많은 좌절 끝에 걸작이 탄생하였고 『보바리 부인』의 귀스타브 폴로베르는 작가로서의 고뇌적 삶을 제대로 산 인물로 진정 위대한 작가라고 칭할만하였다. 하지만 별난죽음편에서의 여섯 인물의 삶은 애처롭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시신이 도굴되고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거나 해부되는 등 그 정도가 기이하다. 체 게바라는 마력을 지닌 인물이긴 하나 위생상태가 엉망이라 돼지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더 웃긴 건 마오쩌둥은 역사상 가장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인물이었다고 하니 그 당시의 위생상태를 상상한다면 코를 틀어막고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명한 천재 편에서 결투를 벌이다 사망한 푸시킨과 기아로 사망한 프란츠 카프카 죽음도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들이 왔다 갔기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정작 지식의 가벼움을 낳을 수가 있다. 지식은 거만을 떨기 위한 용도가 아니다. 다만 이런 책들을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장이 열리고 내면의 둑을 더 다져보는데 열의를 쏟는다면 더 나은 나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온 대기가 더위의 열기를 머금고 있는 8월에 뇌까지 녹아내리는 듯 멍한 상태에서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한 줄에 기운을 건져내고 책장을 덮었다.
"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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