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커플, 그리고 운명 같은 그들의 사랑! 소설의 시작점만 본다면 선남선녀의 짜릿한 섹스만큼이나 그들의 피끊는 청춘과 사랑에 부러움이 가득이었을 스토리지만 그 운명 같던 사랑 아래 엄청난 비밀과 거짓이 숨어있었다면 그것은 한낱 모래성이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두 남녀의 관점으로 분리되어있다. 그래서 600페이지의 두께감을 자랑한다. 서로의 삶과 각자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구성이 되어 있다. 운명 편에서는 로토의 삶이, 분노 편에서는 마틸드의 삶과 운명에서 다 드러나지 않았던 비밀들이 밝혀진다. 그래서 분노 편은 운명 편보다는 더욱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지만 충격적이고 숨겨진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나의 감정은 오만가지로 뒤범벅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 플로리다, 고요한 폭풍의 눈에서 태어났지만 빛과 같은 삶을 살고 있던 로토, 그러나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저 어둠의 싱크홀로 빠뜨려버린다. 엄마 앤트워넷마저 남편의 빈자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자 로토는 사춘기 시절을 방탕하게 보내게 되고 어느 날 만취해 저지른 사고로 뉴욕 사립학교로 보내지게 된다. 그러나 영문학 수업시간에 만난 선생님으로 인해 연극의 매력에 흠뻑 빠지면서 활력을 되찾은 그는 수려한 외모와 함께 인기도 치솟는다. 그리고 대학 연극에 출연한 마지막 밤 쫑파티에서 그를 사로잡은 여인, 마틸드를 통해 새로운 빛을 찾게 된다. 22살의 피끊는 청춘들에게 사랑의 빛만큼 강렬한 것은 없었으니~~

"

나와 결혼해줘!

..
기꺼이

"

 

그녀는 그가 지금껏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고, 그는 그 순수함을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 p.70

그의 잃어버린 빈자리를 밝혀줄 햇살 같은 여인, 마틸드는 바로 그의 운명이었다. 심지어 모든 여학생들과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문란했던 그에게 숫처녀임을 알게 되자 그녀는 그야말로 성스러움이었다.
그러나 그런 두 사람의 급진적인 사랑은 현실의 벽에 조금씩 흔들린다. 결혼의 반대로 끊어진 금전과 뜻대로 되지 않던 배우의 길은 그의 자존감이 무너져 가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마틸드는 로토와 그리고 그녀의 가정을 사랑하고 아꼈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로토에게서 어느 날 극작가로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아낌없이 내조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로토는 극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지만 그들은 운명은 희극에서 비극으로 바뀌게 된다. 마틸드의 알 수 없는 과거는 결혼생활 내내 로토에게 의심의 그림자를 지우게 한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 알려주는 것 이상은 묻지 않았다.-p.71
마틸드는 미스터리에 둘둘 싸인 수수께끼야. 대학에서는 친구도 없었어. 내 말은, 누구든 대학에 다닐 땐 친구가 있잖아.
그 애는 어디 출신이지? 아무도 몰라. -p.79
뭔가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져. 로토는 충실한 척하고, 마틸드는 신경 쓰지 않은 척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p.95

이렇듯 갑자기 드러난 마틸드의 과거는 로토와 독자들에게도 배신감이었다. 그러나 그가 운명이라고 믿었던 운명으로의 배신감은 분노 편에서 수그러들게 된다. 이렇듯 분노 편을 읽다 보면 운명 편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의 틈이 메꾸어지게 된다. 그래서 운명 편에서는 무수한 복선들이 깔려있다. 작가의 능력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순간으로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분노 편에서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처음부터 마틸드가 아니었다. 오렐리라는 이름을 가진 행복한 가정의 사랑스러운 외동딸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든 첫 번째 작은 분노는 남동생이었고 그 남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어쩌다 일어난 그 사건은 그녀의 삶에 얹힌 엄청난 분노이자 절망이었다. 그녀는 철저히 버려졌고 혼자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돌봐줄 친척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남겨진 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오렐리를 벗어던지고 마틸드로 새로운 문을 열었다.

오렐리는 온화하고 온순했다. 한편 마틸드는 겉보기엔 평온했지만 속은 뜨겁게 들끓었다.-p.398

주변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믿을 사람은 자신이라고 일찍이 철들어버린 소녀는 사회에 또 내버려질까 늘 불안해한다. 그만큼 영리했지만 삶은 그녀에게 부도덕한 유혹을 하게 만든다. 그 선택은 지독한 가난은 비껴가게 해 주었지만 그녀를 비극의 운명에 또 한번 가두어 버리게 된다. 온전히 한 사람의 아내로 그리고 그녀만의 세계로 스며들고자 했던 노력은 그녀를 끝까지 행복으로 밀어 넣지 못했다.

'절대'는 거짓말쟁이다. 그녀에게는 더 나은 방법이 없었고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다.-p.432

그녀는 로토를 선택하고도 외롭고 불안해해야 했으며 앤트워넷은 끝내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마저도 온전히 다른 사람들 것인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렐리인 그 아이가 불쌍했고 마틸드의 삶이 부서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녀를 감성적으로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비난받을 일이었기에 오히려 그녀가 로토의 인생에 끼어든 불청객 같은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그와 운명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그녀, 처음부터 시작점이 달랐기에 그들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에게 로토는 넘보지 못할 산이었을까.

그녀는 부엌 식탁에 아주 오랫동안 앉아 있었고, 앉아 있는 매 순간 분노는 점점 커져 덩어리가 되었다가, 이어 암흑이 되었고, 점차 커졌다. -p381

모든 사건들은 얽히고설키어 부풀려지다 터지기도 한다. 특히 거짓된 삶은 진실이 꿈틀거리면서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것이 원한이든 분노든 득이 될 인생은 없다.
그러나 앤트워넷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가진 자의 교만이 혐오스러웠고 덜 어른스러운 로토가 답답했다. 어쩌면 자기감정에 충실한 마틸드에게 동정표가 더 주어진 이유는 점점 더 가식이라는 껍데기에 세상이 덧 씌워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철저히 악녀이지도 순정녀이지도 못한 채 로토 주위를 맴돌았던 것 같다. 그를 잃고도 섹스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그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실임을, 그렇지 못한 삶은 모든 이의 운명이 꼬여버림을 마지막으로 드러난 비밀이 더 말해주고 있는듯하다.

2015년 오바마가 극찬하고 많은 매체들이 로런 그로프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분명한 건 운명과 분노는 내게 많은 질문과 경우의 수를 던진 책이다. 로토와 마틸드 그리고 그 주변인들을 통해 자아와 행복한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