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문학마을 Best World's Classic 2
헤르만 헤세 지음, 김윤선 외 그림, 박준석 옮김 / 문학마을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책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라는 질문을 어느 식당 주인아주머니에게 받았다. 아주머니는 중학교 시절 데미안을 읽고는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 지금 펼치시면 아마 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요?."라고~^^
여행 중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이의 관심이 싫지 않았다. 아니 조금 반갑기도 하였다.
이렇듯 데미안은 많은 이들에게 읽혀 왔고 미쳐 읽어보지 못했더라도 [데미안]이라는 제목을 들어본 이는 많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민음사 전집 시리즈인 데미안을 읽은 후론 여태껏 재독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하다가 이번 「문학마을」에서 출간한 신간에 손을 뻗어 보았다. 책은 미니 사이즈로 한 손에 쏙 들어오며 게다가 심플한 일러스트 그림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의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는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마음이 비장해지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같지 않음을 느낀 이유도 세월의 흔적이 내 몸 구석구석 베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 번의 생을 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존재다.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존재다." -p.007
이 구절에서 왜 그렇게 오래 머물러야 했는지.... 그리고 온몸에 전율이 갑자기 전해져 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이 당연한 말들을 우리는 왜 놓치고 사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주변인뿐만 아니라 내가 싫어하던 인간들까지 떠오르자 갑자기 조금 부끄러워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이처럼 책은 서문부터 벌써 철학적이다.

두 개의 세계에서 공존하는 사람들, 즉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선과 악, 이 맞닿아 있는 두 세계로 인해 심적 갈등에 빠지는 사춘기 소년, 에밀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 인생의 첫 시련을 겪게 되고 데미안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미안에게서 다양한 내면의 소리에 눈을 뜨게 된다. 사람인 듯 아닌 듯 모호한 데미안의 존재는 어쩌면 인생에서 뇌를 번쩍이게 하는 깨달음 같은 존재, 즉 싱클레어의 자아가 아닐는지..

내 문제는 곧 모든 인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거대한 사유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는가를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밀려들었다. -p.116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헤어진 후 생의 고뇌로 몸살을 앓게 되고 방황의 늪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러나 우연히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베아트리체 이미지를 간직한 소녀는 그를 선의 세계로 이끄는 새로운 원동력이 된다. 데미안을 향한 그리움은 깊어만 가고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지만 고통스러운 고뇌는 계속된다. 데미안이 건네준 편지 속 아브락사스의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더욱 고뇌에 빠진 어느 날, 어느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데미안의 뒤를 이어 생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로 그의 내면을 더욱 굳건하게 해 준다. 이후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다시 만나 삶과 이상향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하게 되고 전쟁을 통해 더욱 견고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모든 문제들이 이 한 권에 모두 있다. 선과 악, 금기사항, 이성과 사랑 등 싱클레어가 처절하게 고민하던 젊은 시절 고뇌의 덩어리들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싱클레어가 하는 고뇌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겪은 고뇌인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들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들뿐이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현실 외엔 그 어떤 현실도 존재하지 않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거야. -p.218

이처럼 데미안은 소년의 성장기와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하여 누구도 자아를 갈고닦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됨을 시사한다. 또한 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뚫고 또 다른 세계로의 운명을 받아들인 수많은 자아들을 보면서 영혼의 울림과 진정한 나를 깨우쳐간다. 전쟁의 시기에 쓰인 그의 소설은 인간의 자아 찾기가 더욱 절박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최근 읽고 있는 전쟁 관련 서적들은 복잡 다양한 인간의 내면과 생명존중, 그리고 개인의 자아의 중요성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가질 수 있어 더욱 값진 독서였다.

이처럼 양분 가득한 책은 보고 또 보아도 계속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어 살지만 알게 모르게 시간의 틈이 많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틈 사이를 메꿀 수 있는 길은 책이다. 그래서 독서를 통해 많은 이들의 가치관과 생각들이 서로 존중받고 더 나은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깊숙이 눌려있는 자아를 깨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는 인간의 의무는 오직 한 가지뿐이어야만 한다. 그것은 확실하게 자아를 발견하고, 도착점이 어디든 그 자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자각은 나를 깊숙이 흔들어 놓았다. -p.245

물질적인 것들에 등급이 먼저 매겨지는 요즘 우리네 젊은이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감을 먼저 맛본다. 그래서 자아실현이라는 단어가 난해하기만 한가보다. 그러나 올곧은 자아를 확립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감당할 힘을 길러내기에 필요한 일일 것이다.
무엇인가 간절히 원한다면 그것은 실현의 길에 가까이 놓일 것이고 결코 우연이 아닌 나의 의지로 이루어짐을 알아야 한다.
오래전 나의 사춘기 시절,  고뇌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지금의 나의 고뇌가 나의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임을 나는 이제 알겠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자아와 운명을 자각해서 그에 최대한 충실하게, 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p.246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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