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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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똑바로 봐!라는 말에 진실을 쏟아내 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여기 그러한 능력을 지닌 수잔은 월등한 두뇌와 더불어 거침없이 매력적이고 당당하다. 더불어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작가의 문장에도 거침이 없고 당당한 문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상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대의 진심을 토해내게 하는 능력, 수잔 효과라 부르는 그러한 능력은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존재한다. 이 얼마나 퍼펙트 한 가족인가.

내 주변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그냥 타고난 거야. 일종의 저주 같은 거지.-p.38

 

방금 그 말을 한건 내가 아니었어. 소매를 걷어 올린 것도 내 의지가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다른 것,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었어.-p.27

 

"전화번호 알려줄게요." 그가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세상 구경하고 싶어지면 연락해요."
자신도 통제하지 못한 사이에 즉석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p.136

'위대한 덴마크 가정'이라는 타이틀로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특별한 가정, 그러나 그녀의 가정의 내실은 퍼펙트하고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 자체로도 평범함을 지닐 수 없었지만 그들각자는 그러한 능력 뒤에 서로 숨어버렸다. 각자의 능력이 쳐 놓은 장막 밖에서 겉도는 가족들, 그래서일까 각자의 행동들은 거침이 없다. 결국 그들의 행동들은 가족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수잔은 그녀의 능력을 담보로 거래를 제안하는 권력자들과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게 된다. 그러나 사건의 키를 찾아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 또 다른 권력이 개입하면서 꼬여가기 시작한다. 중반부로 갈수록 그녀를 돕는 인물들에서도 눈을 뗄수가 없는데 선인과 악인을 가려내는 일과 그녀가 권력에 이용만 당한채 철저히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건 아닐까하고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직업은 물리학과 강사이지만 물리학전공자라기보다는 그녀의 대담함과 강인함은 전문 요원을 능가해 보인다. 모든 현상의 근원을 물리적 현상과 연관시키는 그녀의 지적 수준은 그녀의 치밀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여겨졌다.
또한 그녀의 남편 라반은 천재 작곡가이다. 음악이 사람의 심신을 위로하는 장치이듯 그의 능력은 음악이라는 매개체와 더불어 더욱 섬세하고 자유분방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런 유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전문용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이해도를 떨어뜨리긴 하지만 우리가 SF 영화를 볼 때 자막을 그냥 흘려보내버리듯이 이 또한 과학 용어를 탓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소설은 수잔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오히려 오해와 불신의 헝클어진 끈이 하나하나 풀려가고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평범한 일상을 찾아가는데 있다고 하겠다. 수잔은 평범한 일상을, 라반은 외롭지 않은 삶을, 그리고 아이들에겐 진정으로 위안과 평안을 느낄 존재를 말이다.
서로의 능력을 서로를 위해 열어둘 것,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진심에 진심으로 화답하는 방법을 깨달아 가는데 있다고 할수 있겠다.

 

 

그날 저녁 이후 우리 관계에는 늘 작은 속삭임이 함께했다.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던 그 속삭임.
'특별한 재능을 남용한 벌을 받게 되지 않을까?' -P.243

소망이면 소망이고 꿈이라면 꿈인데, 너희에게 뭘 가르쳐주겠다 그런 것도 아니고 음악과 관련된 것도 아니었어. 그냥 너희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였어. -P.319
그래서 난 너희를 가졌을때 머릿속에 떠오른 게 단 하나였어. 내가 식사를 준비하고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
지금 생각해보니 그 배경에는 계획이 하나 있었어. 너희들이 독립할 때까지는 라반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계획. -P.321
엄마, 내 생각에 엄마는 물리 숙제를 고치듯 세상을 수정하려고 했어요.-P.329

그녀에게 주어진 미션, 미래위원회의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권력의 이기주의와 마주한 그녀는 극도의 피로감과 환멸을 느끼게 된다. 자연과학이 이룬 결과물을 권력자들이 가로채 가는 현실과 그 권력을 쥐고 흔드는 이들에 대한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데 진실을 읽어내는 눈동자 앞에서는 그 진실이 좀 게으르긴 하더라도 언젠가는 드러남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황금 및 미래를 꿈꾸기가 더욱 힘들어진 지금, 이미 이러한 주제는 다양한 작품에서 많이 다루어졌었다. 그래서 나는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중간중간 잔인한 장면 묘사에 수잔만큼 대담할 수가 없었다.
처음 읽어보는 덴마크 소설은 확실히 동양권과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은 있지만 강인한 여성성을 그려내고 있어서 더욱 신선하였다. 이렇듯 세상과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오류, 즉 똑똑하지만 멍청하기도 한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문학에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능력이 아닌, 어쩌면 세상 어딘가 이러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더러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까. 마냥 허구일 거라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기도 했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쪽으로 쓰게 될까? 우스운 고민도 해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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