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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4월
평점 :

독특한 구성과 문학적 창의성이 두드러진 또 한 명의 작가를 만났다. 나에게 맨부커 수상작들은 대체적으로 재독을 해야 비로소 소설의 흐름이 들어왔기에 그녀의 소설 [루미너리스]는 읽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었다. 대체적으로 어렵다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 한몫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그녀의 데뷔작이 번역돼서 출간이 되었는데 망설일 틈이 없었다. 화려한 타이틀을 거머쥔 그녀의 글이 만만치 않을 꺼라는 점을 예상해서인가 전반적인 내용의 의미는 파악이 되었으나 음악부의 요일에서 장이 바뀌고 연극부의 11월, 10월, 2월을 건너뛰는 장치에 시간적 공간이 어디인지 갈팡질팡하였다.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에 익숙해져있는 독자라면 참신하긴 하지만 조각조각을 던져놓고 짜깁기를 요구하는 이 불편한 구성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였다.
그렇게 짜깁기 하다 보니 다른 시점의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이솔드와 줄리아가 상담실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는데 흥미롭고 신선한 장치였다.
소설은 10대 사춘기 소녀들의 성과 섹스, 그리고 그 이 나이 또래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성향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시작점이 '섹스 스캔들'이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선생이 학생을 강간한 사건으로 둔갑하지만 그 이면은 또 다른 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즉 10대들의 솔직하고 발칙한 성에 대한 생각을 수면으로 끌어내어 소녀들이 더 이상은 소녀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러한 장치로 대학 연극부의 오디션 과정과 연극 수업을 바탕으로 연기와 인생에 대한 다양한 논리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의 창의성이 더욱 돋보이며 각 캐릭터의 내면의 심리를 잘 풀어놓은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금기사항인 섹스로 학교를 발칵 뒤집은 빅토리아는 오히려 대담하고 이중적이다. 그리고 그녀의 동생 이솔드는 그런 언니의 이중성에 역겨움을 느낀다. 하지만 언니의 사건 이후 이솔드에게 강한 매력을 어필하며 나타난 줄리아로 인해 또 다른 금기사항인 동성애에도 눈을 뜬다.
줄리아는 사춘기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솔직함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반항아이며 소녀들의 입을 대변한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색소폰 선생의 인생을 이해하는 연결고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의 입을 통해 지금 이 시기의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지금 이 시기는 나중에 올 모든 것에 대한
리허설일 뿐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그 인생의 리허설은 연극부로 대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자신의 삶에 나름 열정적인 스탠리를 주축으로 주임 선생들과 또래들 간의 대화는 진정한 연기의 고민을 통해 드러나며 뇌리를 스치는 다양한 문장도 눈에 띄었다. 또한 스탠리를 통해 자아성찰, 인생의 양면성 등을 접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놓인 인생의 적정선은 어디까지인가 고민도 해 보았다. 이야기는 스탠리와 이솔드의 만남으로 더욱 구체화가 되고 스탠리의 연극부의 프로젝트 과제 선정 등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두 공간에서의 진실점을 맞추어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제삼자의 입장에 서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봄으로써 조금 더 이성적인 판단력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난 핵심을 말하려고 하는 거야. 그저 관객이 꽉 찬 객석 앞에서 무대에 서 있을 때 ‘진짜’라는 건 아무 쓸모도 없는 말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거지.
‘진짜’라는 말은 무대에선 아무 의미 없어. 무대에서는 진짜처럼 ‘보이는’ 데에만 신경을 쓰지.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면 그게 진짜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치 않아. 상관없어. 그게 핵심이야.” --- p.20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