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위 리브
엠마뉘엘 피로트 지음, 박명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유대인들이 무서운 독일군을 피해 몸을 꽁꽁 숨겨야만 했던 제2차 세계대전, 슬픔과 아픔의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야 하는 역사의 현장 속~ 소설은 그때의 배경으로 돌아가서 시작된다.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고아 소녀 르네는 유대인이다. 소녀 역시 살기 위해서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했고 이집 저집으로 떠돌아야만 했다. 그러나 운이 좋았던 그녀.. 죽음의 그림자는 그녀 주위를 그렇게 맴돌다 가곤 했다.

그날도 어느 신부에게 맡겨졌으나 숨돌릴 틈도 없이 독일군을 피해 달아나야만 했다. 복불복의 순간, 그들을 향해 달려온 건 두 명의 미군 병사의 차량이었다. 차에 태워진 르네. 다시 한번 희망을 예감한 순간,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들은 독일어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전쟁이 한창인 그 시절. 독일은 특수훈련을 받은 그들의 병사를 미군으로 위장시켜 현장에 투입했었는데 그들이 바로 위장 미군이었던 것이었다.
르네는 여태껏 잘 버텨온 그녀의 행운에 체념하며 죽음을 예감한다. 그러나 독일군이 겨눈 총부리에 두려움을 느끼기에 앞서 삶의 갈증 때문이었을까.. 눈을 한 움큼 집어 들어 삼키게 되고 삶의 의지를 드러낸 강렬한 눈빛과 마주한 독일군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충격을 받는다. 그의 총부리는 결국 동료에게로 향하게 되고 르네에게 온 죽음의 정령은 그녀를 또 놓아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유대인 소녀와 독일군의 미묘한 인간애는 적군과 아군이 언제 뒤섞일는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함께 벨기에의 한마을에서 시작되었다. 포성은 끊어지고 야생의 세계만이 가득한 숲 속, 그리고 지독한 추위 그 둘의 공존이 시작된 것이다.

" 그윽하고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지극히 바라보는 소녀, 그가 잠들어 있을 때 밤새 그를 지켜보고, 그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에게 전해주는 소녀, 이 모든 것은 그의 정신과 그의 육체 속에서 아직 너무나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혼란스러웠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이었고, 점차 그를 말 없는 기쁨으로 가득 채웠다." - p.32~33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전쟁은 그 이후 다양한 작품들의 소설적 배경으로 재탄생하였다. 전쟁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나는 잔인하고 생생한 증언을 담은 책들과 오랜 여운과 감동 충만한 여러 작품들을 접해 왔었다.
유대인과 독일군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나를 끌어당겼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아쉬움을 남겨버렸다.
르네의 삶을 갈망하는 빛나는 눈에 동요한 독일군의 심경 변화와 소녀가 무작정 군인에게 의지하여 그에게 의지하는 내용은 선이 명확하지 않아서 일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얼마전에 읽었던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에서 받은 감동과 여운이 더 남아서일까. 르네의 감정과 독일군 마티아스의 감정선을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많은 이유를 갖다 붙여보아야 했다.

죽음을 피해 숨고 달아나면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어린 7살 소녀 르네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준 독일군에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서 인간적 면모를 느낀 그녀가 그에게 절대적 믿음이 생겨버린것은 당연하겠지만 보통의 7살 아이가 지니는 감정치곤 지나치게 어른스러워서일까. 하긴 대부분의 전쟁 속 어린 주인공들은 어른스러우면서도 총명한 특별함을 지녀서 항상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어린 소녀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항상 의문을 갖는다. 정말 가슴아픈 의문이 아닌가. 냉열하고 비열한 히틀러...이 나쁜 놈.~!
"그녀에게 '유대인'이라는 말은 진정한 수수께끼였다. 르네는 언젠가 그 비밀을 알아내리라고 다짐했다.
..
대체 무엇 때문에 유대인이라는 말이 그토록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하는지 너무도 알고 싶었다." -p.59

그런 르네에게 다가온 독일군 마티아스는 수없이 살인을 저지른 살인병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를 동요하게 만든 감정이 무엇일까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숲 속을 누비고 다니던 자유인이었고 그의 생명을 살려준 인디언들과의 짧은 만남은 그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잔인하게 생명을 대했지만 그의 깊은 내면엔 인디언들의 삶의 가치가 어느새 한편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 그는 그 소녀를 만난 이후로 자신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르네(Renee, 프랑스어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옮긴이)라니, 마치 어떤 운명을 예견하는 이름 같지 않은가. 이건 거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순간 그 인디언 노파의 얼굴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p.71

전쟁을 통한 고독은 익숙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반면에 지독하게 인간애를 갈망하기도 한다. 그게 살고자 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에 곁에 르네가 없었다면 그가 두 번의 죽음의 순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는 절대 악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 소녀 하나를 살려주었다고 해서 갑자기 선인으로 돌변할 수는 없다.
다만 중요한 건 누구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전쟁에서 그가 인간애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따뜻함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소설 속에 많은 희생이 없어서 다행스럽다고 해야겠다.

이 두 사람의 감정선이 단순히 인간애인지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사랑인지는 우리 독자들의 몫이겠다.
개인적으로 소녀의 병사라는 문구에서 애틋함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먼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기획한 작품이라고 하니 어떤 멋진 배우와 매력 넘치는 눈빛을 가진 아역배우가 꾀 차게 될는지 기대가 된다. 하나 더 바란다면 유명 배우 이름을 내걸기보다는 내공이 멋진 영화로 탄생되길 바라본다.

" 그런 게 뭐가 중요하죠? 오늘 살아 있으면 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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