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격자들 - 어린이 목소리를 위한 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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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다독여가면서 읽었다. 한숨도 여러 번 내쉬었다. 그러다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전쟁이 발발해서 피난준비를 하는 꿈을 꾼다. 짐을 꾸리다 내일이면 터질 전쟁으로 무척 심란하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며칠을 그렇게 요란하게 꿈속을 헤매고 다녔다. 
오죽하면 남편이 잠꼬대하는 소리에 시끄러워 딸아이 방에서 잤다며 투덜거린다.ㅎ 계속 무어라 중얼거렸다는데...혹시 욕설이 나오진 않았냐고 슬쩍 물어본다.~ㅎㅎ
아무래도 전쟁의 이런 생생한 증언이 나에겐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제2차대전의 생생한 기록물이나 영상 등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었고 유대인 학살의 아픔 정도만 알고 있었던 터라 이 구소련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전쟁의 잔혹함에 대해선 들은 바가 거의 없었다.

이 한 권의 책 안에 들어있는 전쟁의 참상은 간략하지만 강렬하다. 비록 시간과 고통의 압력에 눌리어 그 기억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버리긴 하였으나 한 구절 , 뚝 끊어지는 장면, 의성어 하나만 보아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깊은 절망의 외침이었는지...
이 작가의 책들이 모두 이런 논픽션물들인데 그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벌써부터 구입해 놓고 다른 일정으로 미루어 두었었다. 그러다 이번에 나온 신작에 먼저 손이 갔는데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동자 속 전쟁 실루엣에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마치 그 속에서 또 다른 액션이 취해질 것만 같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총이 발사되고 사람이 쓰러지고 땅에서 폭탄이 터져 올라올 것만 같았다.

이 책은 작가가 '전쟁고아클럽'과 '고아원 출신 모임' 101명을 인터뷰한 작품으로 0세부터 14세에 이르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역사서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기까지의 러시아와 그 주변국들에 대해선 아는 바가 많지 않았고 벨라루스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더욱이 아는 것이 없었다. 1941년 6월 21일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되고 1945년까지 이 지역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마을은 사람들과 함께 불타고 무차별 폭격과 총질에 인구의 4분의 1이 사라지고 남은 고아의 수도 2만 5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람들은 그냥 사라진다. 독일군에게 그들은 벌레보다 못한 존재이다. 그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하늘에선 조종사가 비웃으며 폭격을 하고 땅 위에선 파르티잔이든 가족이든 모조리 총살한다. 살아있는 이를 그냥 묻기도 하고 젖을 먹이고 있는 여인을 쏘고 아기도 쏜다. 집안을 뒤지면서 눈에 띄는 이는 다 쏜다. 식탁보를 들추어 숨어있던 아이도 죽이고 웃지 않고 운다고 죽이고 오죽하면 동물들도 독일군이 나타나면 울거나 짖지 않는다고 했을까.

충격적이었던 건 독일군 부상병들을 위해 아이들의 피를 뽑은 일이었는데 5살 이하의 어린이의 피는 상처치유와 재생에 도움을 준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피를 뽑히고 죽어간다. 특히 금발의 파란 눈동자의 아이는 더욱 선호 대상이다.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피를 뽑히고 다음날이면 그냥 눈을 감아버린 아이들..

'의사들'이 떠나면, 난 방으로 돌아갔어요. ······ 기억나요. 어린 사내아이가 누워 있는데, 그 아이의 작은 손이 침대에서 툭 떨어져요. 그 아이의 팔에서는 피가 흐르고요. 다른 아이들이 울고 있어요.······
2~3주가 지나면 아이들이 교체되죠. 사람들이 고아원의 아이들을 어디론가 데려가요. 그 아이들은 모두 이미 창백하고 쇠약했지요, 그다음에는 또 다른 아이들이 끌려와서 사육되었어요.
독일군 의사들은 다섯 살 미만 아이들의 피가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돕는다고 여겼어요. 또 그런 아이들의 피에 회춘의 효능도 있다고 생각했죠.  - P.143

눈앞에서 부모가 총살당하고 또 그 부모를 묻어주는 아이, 나의 예쁜 엄마의 얼굴은 왜 총을 맞아야 했는지, 피난길에 아빠가 왜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는지..그 어린아이들은 영문을 모른 채 옆에서 어딘가에 숨어서 그렇게 전쟁의 참상을 담아 가고 있었다.

내 몸은 오랫동안 성장하지 않았어요······ 고아원에 있는 동안, 우리는 모두 발육이 느렸어요. 아마도 슬픔 탓이겠죠. 우리가 자라지 않았던 것은 다정한 말을 별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엄마 없이 자랐잖아요 ······ -P.311

또한 더욱 끔찍한 일은 2차 세계대전중 레닌그라드는 약 900일 동안 독일군의 포위로 봉쇄되어 이 기간에 굶주림과 추위로 사망한 시민이 약 1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는 목소리는 더욱 처참하다. 배고픔은 굶주림으로 이어지는데 그 증언이 실로 충격적이다.

봉쇄를 겪고 난 후 ······ 난 이제 알아요. 인간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요. 사람들은 심지어 흙도 먹었어요.  -P.330

배고픈 사람에게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예요. ······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배고픔이에요. 난 단추를 씹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큰 단추, 작은 단추 가릴 것 없이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미쳐갔어요 ······-P.366

그들의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 가슴속에 남았다. 그들이 얘기하는 전쟁의 컬러가 흑백인 것처럼 피마저도 진한 회색같이 느껴진다. 또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인간의 복잡 다양한 사고력과 감정들이 세뇌가 되고 통제가 된다는 사실이 무섭다. 이렇듯 지나치게 양면성을 가진 영장류도 없으리라. 히틀러라는 광신도 한 명이 낳은 결과라고 보기엔 너무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기에 더욱이 끔찍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전쟁의 참상이니 실은 이것보다 더 했으리라.

전쟁의 시작을 기억하는 이들..그리고 끝남을 기억하는 이들..기억의 조각들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그들이 기억하는 전쟁은 우울, 고독, 두려움, 공포,굶주림 ······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오래오래 남았다.
전쟁은 영화처럼 게임처럼 영웅담이 결코 아니다. 올 초였던가? 밀물에 떠밀려온 난민 아이의 시신 기사와 폭격당한 자리에서 몰골이 말이 아닌 채 앉아 있던 꼬마 아이 사진 등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는데 오늘은 또 시리아 난민 중 5살 아이가 폭격에 다쳐 마취도 못하고 치료를 받는데 통증을 참으려고 코란 경전을 웅얼대는 영상을 보았다. 이런 고통의 목소리를 듣고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통곡할 일이다. 정말 신은 있는가?그 아이가 살아서 훗날 또 어떤 기억의 잔상을 끌어안은 채 살게 될까.
제발 소설의 제목처럼 전쟁의 마지막 목격자들로 기록되었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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