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세트 - 전2권
말런 제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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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란 무엇이고 과연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가?
"눈을 뜨고 내면을 바라보라, 당신들이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하는가?"

 

 

 

“이 작품은 범죄의 세계를 넘어 우리가 거의 알지 못 했던 역사 속으로 깊숙이 안내하는 소설로, 이 시대의 고전이 될 것이다” 라는 이 한 줄의 심사평에 이끌리어 주저하지 않고 예약 구매를 했던 소설이다. 그런데 초반부터 거칠고 난해가 문체가 껄끄럽기 시작하였고 여태껏 이런 불편하고 낯선 느낌의 책은 처음이었다. 작가의 천재성은 인정하고 싶지만 말런 제임스 특유의 문체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인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책 『적절한 균형』을 읽었을 때보다도 더 몰입하기 힘든 불쾌감이 밀려드는 건 내가 여성 독자라서 더욱 소화하기가 버거운 점이 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비속어와 욕설은 이미 도를 넘어 섯고 문장 같지 않은 문장들의 집합체 같은 말런 제임스의 문체에 놀라 1권을 읽고 나서 2권을 집어 들기까지 2주가 걸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많은 등장인물과 다채로운 13명의 화자들이 쏟아내는 기법은 독백이나 인터뷰를 하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몰입하는 데는 좋은 기법이었다. 각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언어 스타일로 이야기를 하고 그들 내면의 생각들이 몇 페이지에 걸쳐 마구 쏟아져 나오는 부분에선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였다. 이런 실제 상황 같은 장면의 묘사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책의 배경은 1976년 12월 자메이카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레게 황제 밥 말리 살해 기도 사건을 소재로 하였다. 당시 자메이카는 스페인과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끊임없는 억압과 혼란을 겪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런 삶에 살아내고 있었다.  또한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는 갱단과 정치가 결속하게 되고 공권력까지 정치권력에 놀아나면서 나라는 말 그대로 무법천지가 된다. 게다가 그런 그들의 손에 무기와 마약을 쥐여주고 뜻대로 조정하려는 미국 CIA의 간섭으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평화를 노래하는 한 가수가 있었는데 자메이카 레게의 전설 밥 말리다.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가수라는 이름으로만 등장한다. 그의 인지도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그가 죽은 후 4일 동안 국장을 치렀다는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는데 그가 얼마나 자메이카인들에게 정신적 지주였는지 알 것 같았다. 흑백 혼혈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는 갱단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밥 말리의 곡이 등장한다. 그의 노래에는 그가 바라는 염원이 담긴 곡이 많으며 지친 이들은 그의 노래로 위로 받았다. 당시 마이클 맨리 수상은 자신의 정치적 꼼수를 앞세워 그런 밥 말리를 내세운 평화콘서트를 기획하지만 공연 이틀 전 7명의 괴한이 밥 말리의 집을 급습하게 되고 이 사건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곱 건의 살인과 연관된 13명의 화자는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사건의 전후를 전한다.

소설은 감당할 수 없는 자메이카의 당시 사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며 태어남과 동시에 폭력을 알고 총 쏘는 법을 익히고 무법의 그늘에서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역사를 알게 되며 그들의 내면에 드리워진 평화에 대한 갈망도 느끼게 된다.
부모가 살해당한 후 게토로 들어와 목숨은 부지하지만 갱단으로 길러져 결국은 사라지는 갱단원의 삶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메이카를 떠나기를 갈망하며 수건 한 장도 이곳 물건은 들고 가고 싶지 않다고 읍 조리던 여인은 그렇게 원하던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곳에서도 또 다른 차별에 좌절을 느끼는가 하면 자기가 저지른 일이 배가 되어 부메랑으로 온다는 걸 알면서도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는 갱단 보스의 삶 등에서 자메이카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작가의 탁월한 능력을 볼 수 있는데 각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다양함을 그들만의 구술로 파악할 수 있으며 사건의 지나치게 친절하고 섬세한 묘사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특히 살인 장면의 묘사는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 화면이 천천히 정지되어 넘어가는 듯하고 어떤 이의 대사는 랩을 하듯 반복적인 대사는 인물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절묘하다. 
마약에 취하고 두려움에 미치고 오줌을 지릴 수밖에 없는 죽음의 공포! 죽고,죽고, 죽이고, 죽이고..그런일들이 일상이 되어 모든 것들이 스르륵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심지어 갱단 보스는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기까지 하는데..그곳엔 공포란 느껴지지 않는다..그냥 죽는 것일 뿐.

 

 

 

책을 덮고선 혼란에 빠졌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의도가 무엇일까,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긴 한 걸까, 시대적 배경을 더 잘 이해하고 보았다면 더 쉬웠을까 등에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다.
밥 말리는 자국의 흑인들에게도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그가 그토록 부르짖는 평화를 또 다른 권력자들은 원치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평화롭게 모인다는 건, 머잖아 사람들이 모여서 정치를 하게 될 거란 뜻이지. 사람들은 벌써부터 어떤 던이 어떤 지역의 국회의원이 될 건지 고르고 있소. 그 말은, 형씨 자리는 더 이상 없다는 뜻이지." -p.234


자메이카 민중의 자유를 갈망하고 슬픔과 저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레게' 그 레게의 전설 밥 말리는 그토록 자국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에도 또다시 자국의 평화를 위해 평화콘서트를 연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당 당수의 손을 맞잡게 함으로써 결국은 소통의 힘이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즉 우리가 바라는 더 나은 세상은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함께 소통하고 토론함으로써 민주주의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맨부커 수상작으로 극찬이 쏟아지지만 그의 문체가 적응이 안 되고 난해한 건 분명한 듯하다. 책의 분량도 만만찮은데 말런 제임스의 거친 호흡에 다시 집중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누군가에겐 대단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불편한 소설이다. 하지만 말런 제임스는 자메이카라는 나라의 역사와 자메이카 하면 레게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또한 레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끔 해 주었다. 내가 예전부터 레게 음악을 들었더라면 이 소설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을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대표곡 'No Women No Cry' 가 쓸쓸하면서도 애잔하게 들리는 이유를 알듯하다.


마지막으로 CIA 요원이 갱단의 부두목에게 민주주의가 왜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웃기는 대사이지만 이상하게 맘에 드는 대사가 있어서 적어본다.
- 냉전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아나?
- 전쟁에는 온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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