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열차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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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phan  Train
        "시간은 줄어들기도 하고 넓게 퍼지기도 해. 무게가 일정하지 않아.

         어떤 순간은 머릿속에 머물고 다른 순간들은 사라져버리지."    - 본문에서

 

 

 

검은 증기기관차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의 두려움과 지친 눈빛에 시선이 고정되어 내 몸도 같이 정차되었다.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기차를 응시하고 있는 한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열차를 탔던 고아들의 희미해져버린 시간들을 다독여주고 싶었던 만큼 이 소설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소설은 역사적 배경에 기반을 두었다는 사실 하나로 강한 팩트가 있으며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성 독자들에게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킬 소설인듯하다. 어떻게 보면 청소년 문고인듯하면서도 역사서인듯하기도 하고 또 한 여인의 자서전 같기도 하다.

내가 요즘 즐겨 보는 책들이 역사서들이고 이책을 보기전에는 전쟁 중 아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책 「마지막 목격자들」을 읽다가 잠시 덮어두었었다. 그러다 이 「고아열차」 를 읽은 후의 느낌은 전쟁이라는 죽음의 공포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의지할 곳, 정착할 곳 하나 없는 아이들의 희망 없는 삶과 고통은 또 얼마나 끔찍하였을까라는 생각에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다. 이것은  오로지 나로의 감정이입이 아닌 내 아이들에게로의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부모 입장에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소설은 미국의 19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일로 그 당시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으로 이민자의 수가 급증하게 되고 거기서 생겨난 고아의 수는 고아원에서 감당하지 못할 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아이들의 수가 20만 명에 육박했었다니 이 엄청난 숫자가 가늠이 되는가?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이 고아열차인데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기차를 타고 모든 건 운에 맡긴 채 새로운 가정의 구성원으로 선택을 받지만 실상은 계약 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비비언 데일리가 바로 이 고아열차의 탑승객으로 그녀가 기차를 탔을 당시의 나이는 9살..때는 1926년이었다.
2011년. 어느덧 91살이 된 그녀는 그 당시 열차를 타고 제대로 된 가정에 정착하기까지의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데 현재의 또 다른 등장인물인 17살 소녀 몰리를 통해 시간적 배경을 건너뛰며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몰리는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신세로 위기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인디언 아일랜드계 소녀다. 비비언 또한 아이랜드 이민계 1세대로 그 시절 아이랜드계들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리의 태생과 비비언의 태생의 연결고리를 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지내고 있는 가정에서도 그리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아웃사이더를 자처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 제인 에어 책을 훔치다 걸리게 된 것이다. 희한하게 소설마다 이런 아이들은 왜 모두 책을 좋아하는 설정으로 나오는걸까..외로움의 대상을 책으로 찾는 걸까? ㅎㅎ
어찌 되었든 몰리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시선이 삐딱하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친구 잭의 도움으로 위탁가정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구제받을 방법을 찾게 되는데 그 일이 사회봉사활동이다.
그래서 몰리는 비비언의 집 다락방 청소 50시간을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렇듯 청소나 해주고 끝내자는 심상으로 시작하였지만 비비언의 애정 어린 관심과 아프고 쓰라린 추억을 담은 다락방 물건들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어느덧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학기 기말 과제까지 더해져 그녀는 본격적으로 비비언의 아메리칸드림 이후의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를 마음의 귀로 듣게 된다.

 

 

 

 

 

 

 

 

 

 

 

 

 

 

 

 

 

 

 

 

 

비비언의 아일랜드 이름은 니브이다. 열차를 타고 낯선 환경으로 옮겨 다니면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다 마지막으로 선택된 그녀의 이름이 비비언이다. 그녀는 7살 때 그녀의 가족 모두가 부푼 희망을 안고 아메리칸드림을 단행한다. 그러나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 꿈은 꿈일 뿐임을 알게 되고 2년 뒤 화재로 혼자 살아남아 다른 고아들과 함께 이 고아열차에 탑승하게 된다. 그녀를 선택한 첫 번째 부모는 아이보단 가계살림에 보탬이 될 일손이 필요했던 곳으로 비비언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지만 경제 대공황이 닥치면서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그곳은 체념과 절망이 서린 최악의 환경이다. 그렇지만 그런 10살 소녀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학교 선생님은 그런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또한 두 번째 집에서 끔찍한 일을 겪고 쫓겨나게 되지만 선생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게 된다. 그러나 계속 그래왔듯이 또 어디론가 보내질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어디론가 향한다.

이 소설엔 아픔의 역사가 있다. 이 고아열차는 많은 감정들을 실린 채로 달렸다. 슬픔, 두려움, 희망 등..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내가 완벽히 이해할 수 없기에 살아간다는 의미보단 살아낸다는 것에 더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빨강머리 앤」의 삶과 비비언의 고아 인생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한다.
비비언의 살얼음 같은 삶은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계심을 바짝 가질 수밖에 없었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펴졌다를 수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삶이 더 비참하지 않았던 것에 안도하면서 책을 덮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녀가 그 불운했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마지막은 인생의 종착역에서 깨닫게 되는 내려놓음과도 같다고 여겨졌다. 이렇듯 한 여인의 인생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 흐려져 무뎌질 일들에 걱정과 무거운 생각들은 조금 덜 하고 밝은 에너지로 시간을 채워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한 내가 그런 최악의 상황에 혼자 남겨졌을 때 삶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도 해 보게 되었다.

나에게 이 책은 값지다. 소설을 통해 고아열차를 알고 전혀 몰랐던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열심히 고아열차에 대한 기사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흑백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에서 긴장감을 느끼다 그 시절을 지나온 컬러사진 속 노인들의 모습에서 안도감과 미소가 지어졌다. 불행한 시절을 겪은 이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그런 상황에선 고아 열차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배고픔과 무관심 속에 죽어갔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그 당시 최선책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오죽했음 고아 열차 운동이라고 했을까.
마지막으로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아직 배우도 날짜도 정해진 바는 없다고 하지만 19세기 미국의 모습이 실감 나게 다가올 듯해서 벌써 기다려진다.

 

 

 

고아 열차의 모습 [출처:http://stargazermercantile.com/the-orphan-trains-end-of-th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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