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

 

 

이 책을 읽고 그다음 날 다시 읽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 이 책이 주는 느낌이 흑과 백의 느낌이어서 다시 정독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영화를 한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의 느낌과 그림이 더 세세해지듯이 두 번째 읽은 후에야 머릿속에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기자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무릎을 탁 쳤다고 하는데 나도 이 소설을 읽고 내가 현재 왜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한 그 답도 얻을 수 있었다. 혼불문학상에 대해선 처음 들어보았고 아직 다른 수상작의 작품도 읽어 보지 못했는데 문학상의 의미가 크고 훌륭하며 뜻이 분명한 상이었다. 그래서 분명한 건 이 책도 가벼운 소설이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하던 차였다. 나이가 들고 가족이 생기고 역사 및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다 보니 최근 일어난 답답한 사건, 사고에 나라 탓만 쏟아 내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같이 고민한다. 현시대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쓰디쓰게 비판하며 이곳엔 웃음소리도 울음소리도 잔잔한 감동도 전해주지 않는다. 그저 한결같은 분위기로 시작과 끝을 마무리하는 듯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이름조차 없다. 그냥 이니셜로 불린다. 스파이가 등장하고 스파이들의 이야기인듯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스파이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사회에서 혁명이란 불씨를 당기려는 이들을 감시, 조사하는 스파이다. 그 스파이로서의 삶의 특권 또한 특별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스파이의 삶에 심리적인 고뇌가 자꾸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X, Y, B, D, Z라는 이니셜로 불리며 소설 또한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그들의 관계는 앞뒤로 자연스레 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일란성 쌍둥이이며 정신과 의사인 언니가 실종되자 언니를 찾아 나선 동생 D, 십오 년의 세월이 머릿속에서 지워진 남자 스파이 X, 정신병원에 있는 엄마, 그리고 X와 얽혀있는 Y, X와 Y의 상사 B,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소설가 Z, 이렇게 다섯 인물들 중 기억을 잃은 남자 X를 주축으로 그들의 삶과 고뇌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권력, 계급, 빈부 등으로 요즘 많이들 입에 담고 있는 단어인 흙수저, 금수저, 자유민주주의국가지만 곳곳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는 사람들, 어찌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삶이 어리석은 희생으로 취급되고 결국은 최상위 계층을 위한 자본주의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사회의 모습은 듣기만 해도 어둡다. 자본주의 끝이란 결국 이런 것인가..

실에만 충실하면, 눈앞만 바라보면, 미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치프가 그동안 벌인 일들을 통해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나 빨리 인간성이 파괴되고, 얼마나 빨리 자본주의가 활개를 치고, 자유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지. -p.210
 
그래서 항상 세상을 지켜보는 누군가를 감시하는 권력의 눈 아래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감시를 당하며 통제를 당하기도 한다. 개인의 정보나 신상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누군가에 의해 악용될 수 있으며 또한 그 체제 아래에서 개인의 사상이나 신념 등을 국가가 은밀히 간섭하고 조종하는데 문제가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나온 예술인 블랙리스트라던지 언론의 사유화, 국정원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일 등은 결코 무심히 지나쳐서는 안되는 일이다. 예전에 군부독재 시절 외삼촌이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셨다가 며칠 만에 나타난 적이 있으신데 이유인즉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던 시절 기고한 글 때문이었다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은 생각이 났다. 내 가족 중에도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정말 참 권력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임을 실감하였고 분노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가장 큰 적은 우리가 아니라 무관심이야. 무관심 때문에 소수의 절대적 지지만으로도 다수를 대변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수를 대변하는 척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게 된 거야. -p.243

시간에 쫓기고 돈 앞에 망설이는 삶, 즉 먹고살기도 빠듯한 삶을 살게 만들면 자연스레 우리는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무관심의 자리에 다른 유희나 오락 등으로 채워 세상을 향한 생각의 흐름을 끊은 채 살아간다.
그래서 이 소설에선 혁명의 주된 핵심을 책에서 찾는다. 책방과 독서클럽이라는 모임이 등장하고 패자의 서라는 단어도 등장한다.

승자도 역사를 쓰지만 패자도 역사를 쓴다. -p.214
어떤 사람들은 조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복잡한 생각을 가진 인간들은 조정이 불가능하죠. -p.248

사생활이 책 읽기였던 보스 B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보스의 이야기 중 소설을 읽는 것의 재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책은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라는 말은 내가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한 답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조용한 은둔자이자 혁명가인 소설가 Z가 감시대상이 되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조용히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감시자들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여기서 소설가 Z의 이니셜에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작가는 왜 Z라고 붙인 것일까? Z를 검색하면 미지수, 변수라는 의미도 나오고 그리스어로 ‘그는 아직 살아 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대중 사이에서 암살된 정치 지도자를 가리키는 일종의 암호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하니 의미가 살짝 맞아떨어지는 것인가? ㅎㅎ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생각이고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책은 위험하지. 책을 대신할 유희는 많지만 책보다 생각을 깊이 전달하는 것은 없지. 책은 만드는 데 돈이 덜 들고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떠돌면서 불어나니까. 한때 작가는 시대의 양심으로 일종의 혁명가였어, 그리고 혁명가는 거의 모두 작가야. 그들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이야기를 남기지. 지배자들은 그래서 늘 책을 없애려고 해. 언제 죽을지 모를 세상에 책은 육체가 사라져도 살아남는, 영혼 같은 거거든. -p.275

이 책에 나오는 스파이들은 다른 이의 삶을 감시하는 대가로 원하는 것을 다 얻는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이의 모습으로만 살아가다 보니 결국은 하나의 점으로 밖에 남을 수 없고 자아가 사라진 채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결코 인간적인 삶이 아니다. 하나의 점으로만 남아야 하는 삶은 끔찍한 현실이다.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며 때론 면을 이루어 살아가기도 한다.

작가가 느낀 삶의 고뇌와 절망의 고통들이 그대로 소설에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이 사회가 이런 감시사회라면 작가뿐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감시대상이 되어 있지는 않을는지....
정치나 사회의 변화에 무관심한 현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외치는 울림 같은 소설이다.
스파이 X가 찾던 자신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을는지. 또한 우리 모두 행복한 새로운 세계를 위해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정말 깊이 고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말한 고요한 밤뒤 내린 눈으로 아침이면 바뀌어 있는 세상을 기대해 볼 수 있길 바라며..
꼭 이 책은 두 번 읽어보길 권한다.~^^

 

 

[책속]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 -p.261

 

내가 사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그 모든 깨달음으로부터 치유가 온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눈을 뜨고 공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참여하라고, 진부하지만 늘 사랑은 정답이죠. -p.287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