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모든 운동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와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
한 명이 도망가면 다른 한 명은, 영원히, 갇혀버린다.

"리디아가 죽었다." 첫 문장이 주는 느낌이 묵직합니다.
리디아는 한 가족의 사랑스러운 딸이었으며 아직 피어보지 못하고 져버린 꽃이에요.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등의 물음을 던져주면서 소설의 첫머리가 시작됩니다.
초반부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 해서인지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어요.
리디아의 죽음의 이유를 알아야 하니까요.

이 소설의 작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부모님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그녀 역시 하버드대 출신입니다.
그녀의 삶의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내린 듯한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었네요.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미국입니다.
1924년에 미국은 동양인들에 대한 입국을 전면 금지한 바가 있었고
그 이후로도 독일 못지않은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난 후 표면적으로는 인종 포용 정책을 취하였지만
실질적으론 동양인들이 터를 잡고 그들의 삶 속에서 어우러지기는 힘들었죠.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은 혼혈 가족으로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여실히 보여주죠.

리디아의 아빠는 중국계 이민 2세대로 부모의 악착같은 노력 덕에
제임스라는 이름으로 미국 사회에 흡수되고 싶어 하지만
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그가 잘 해야 하는 건 오로지 공부뿐이었던 거죠.
그런 그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여인이 바로 벌꿀 색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메릴린입니다.

그녀는 이혼한 가정에서 엄마의 억척스러운 보살핌 속에
남자들만의 직업으로 여겨졌던 의사라는 직업을 꿈꾸며
하버드대에서 꿈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던 3학년 학생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교수와 학생으로 첫 만남 뒤로 하나가 됩니다.
항상 백인들로부터 배척받던 삶을 살던 제임스에게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메릴린은 
처음으로 자신을 받아주기 시작한 유일한 미국인이죠.
그리하여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게 돼요.
또한 메릴린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이 수줍은 남자를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찾아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잘 이겨 나갈 것 같던 그들의 삶은
리디아의 죽음 이전에도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리디아의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해체될 위기에 처합니다.
제임스보다도 메릴린은 자신의 이루지 못한 의사라는 꿈에 심하게 목말라하다
 결국 해서는 안되는 일을 벌이고말고 제임스 또한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게 돼요.
그리곤 리디아의 죽음의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 리 가족의 운명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실종된 줄 알았던 그날 아침의 분위기와는 달리 마을 호수에서 시체로 발견된 후의 상황까지
리 가족에겐 서로 입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아가게 되죠.
왜 하필 둘째 리디아가 죽은 걸까요?

리디아는 중국인 같기도 하지만
그녀의 눈 색깔은 유일하게 오빠와 여동생과는 달리 파란색입니다.
그런데 머리색은 금발이 아닌 검은색이죠.
그런 그녀를 제임스는 더욱 특별히 여기게 되고요. 메릴린 또한 딸에 대한 애착이 가장 큽니다.
그런 리디아의 죽음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리디아의 동생 한나에요.
한나는 모든 가족을 제일 잘 아는 인물인 것 같았어요.
이야기는 가족들의 시선을 통해 리디아의 죽음의 이유를 하나하나 풀어나갑니다.

이 소설은 그녀의 첫 장편소설로 6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탄탄한 구성과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그 당시 시대상을 잘 말해 주고 있어서 이민자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었어요.
특히 리디아의 관심과는 달리 그늘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첫째 네스의 소외감, 막내 한나의 외로움이 더욱  안타까웠네요.
그들은 왜 다들 괜찮은 척 미소를 띠며 살고 있었던 걸까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기만 했어도 이 가족에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들이 계속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네요. 
특히 메릴린의 무모함이 용서가 안되었고 자신의 꿈에 대한 보상을 자녀에게 전가시켜버린 행동은
그녀가 정신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죠.
서로 다름의 매력에 이끌린 두 사람이 결국은 이 다름을 이해하는 데는 리디아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깨워놓아요. 
결국 리디아는 누가 죽인 걸까요?
왜 인간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걸까요.
나 외에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진심 어린 시선이 필요할 것 같아요.

흰색과 흰색이 아닌 것. 그것은 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일이었다. - p.284

'다르다' 는 제임스의 이마에 언제나 찍혀있는 상표였고, 제임스의 두 눈 사이에 박혀 있는 문장이었다.
'다르다'라는 단어는 제임스의 인생 전체를 물들였다.
..
하지만 메릴린에게 '다르다'는 말은 제임스와 달랐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기가 죽지 않았던 어린 메릴린.
메릴린은 정말 '다르게' 되고 싶었을거다. 자신의 인생도, 자신도, 정말로 달라지고 싶었을 거다.-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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