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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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브]를 통해 알게 된 헨리 제임스. 그의 소설 <비둘기의 날개>를 찾다 <나사의 회전>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유령 소설이자 심리소설이란 문구가 강렬하게 나를 끌어당겼는데 무엇보다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이 흥미로웠다.

나사의 회전은 헨리 제임스의 나이 55세에 발표된 소설이다. 그렇다면 제목 "나사의 회전"은 무엇을 의미할까. 8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

만약에 어린아이 한 명이 나사를 한 번 더 죄는 효과를 가져온다면, 어린아이가 두 명일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

중세의 건축물이 주는 분위기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이끌어 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고딕소설이다. 시골에 자리 잡은 고립된 대저택과 오래된 탑, 한적한 호수 등은 유령이 출몰하기에 그럴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에서 많이 본듯한 장면들인데 이 소설의 영향을 받은 작품의 수가 꽤나 검색이 되었다. 영화 <디 아더스>나 최근작 <더 터닝>을 헨리 제임스가 보았다면 꽤나 만족스러워할듯하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고작 넷, 그리고 실체가 모호한 두 명의 유령이 전부임에도 소설의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모호한 공기는 유령의 등장으로 극대화되지만 가정교사와 아이들 간의 신경전에서 오는 공포감도 만만치 않다.

삼촌의 두 아이를 부탁받는 가정교사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가정교사가 죽은 지 이십여 년이 지난 후 당시 그녀가 남긴 경험담이 더글러스라는 인물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등장하다 보니 객관성을 따지기가 모호하다. 어디까지나 가정교사 본인이 생각하고 추측하고 단정하고 결론을 지어버린 이야기이므로 유령의 존재까지도 의심이간다. 그랬기에 단서뿐인 모호한 설정은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었고 복잡한 인간 심리에 심취하게 된다.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상반된 두 시선으로 인물 간의 관계도를 설정할 것이다. 어린아이의 사악함과 영웅적인 가정교사 혹은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과 정신분열증이 있는 가정교사로.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엔 문장 곳곳에서 발견되는 단서들로 내내 혼돈이 온다. 심지어 그 더글러스라는 인물의 실체와 이야기에 제목을 붙인 나의 존재까지도 의심투성이다. 제일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건 마일스가 퇴학을 당한 이유였지만 피터 퀸스와 제셀양의 관계와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삼촌의 의중 등 대저택에서 풍겨오는 그 어떤 것도 심증만 있을 뿐 명확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가 보았던 유령의 실체를 그로스 부인도 확인해 주었을 땐 유령의 실체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과거의 좋지 못했던 일들이 현재의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음이 보인다. 한편으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가정교사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가 짙고 책임의식도 강하다. 어쩌면 자연의 섭리를 너무 믿은 나머지 자신이 이곳에서 선장 노릇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간단히 말해 내가 완전한 침몰을 면하기 위해 키를 움켜잡았던 것이다. -제22장) 어쩌면 지나친 애착으로 허황된 집착의 늪에 빠진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게다가 마일스와의 이성 구도는 은근 거슬린다. 마일스와의 대화 내용에서 느껴지는 줄다리기는 뭐랄까. 이성에게 호감을 품은 남녀 사이의 대화 같다고나 할까. 단언하는 가정교사보다 마일스가 그녀를 떠보는 방식이 영악해서 소름이 돋는다. ​

물론 그 무엇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녀가 정말로 유령과 아이들 사이에서 심리전을 벌인걸 수도 있고 영매의 능력을 지닌 그녀가 유령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신분열이 점점 심해지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나역시 점점 이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그렇다면 나사의 회전은 어떤 의미일까. 8페이지의 문장만 보면 팽팽하게 조여오는 긴장감을 말한듯한데 책을 덮은 후에 드는 생각은 정신줄을 놓지 말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소박한 인간 덕목의 나사 -p.183를 자주 죄야 할 것만 같다고나 할까.

워낙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보니 번역가마다 원문을 해석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어 보였다. 민음사 외 출판사의 책을 읽었던 지인들 덕에 이야기는 더 풍성해졌다. 원문에서 어쩜 그리도 다양한 문장이 나올 수가 있을까. 그리하여 나사의 회전은 독서모임용으로도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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