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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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6월의 어느 하루. 세 여인은 자신 본래의 이름으로 살고 싶어 한다. 지긋지긋한 그 시간들(The hours)을 버리고.

1923년, 버지니아 울프는 <델러웨어 부인>의 삶을 궁리 중이다. 부인에게 부여할 자유와 권리에는 그녀의 내재된 욕망으로 충만하다. 부인이 살아가는 소설 속 세상은 버지니아 스티븐, 그녀가 원하는 삶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익히 알다시피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운 채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완성된 책은 1949년, 로라 브라운의 삶을 흔든다. 그녀는 스스로 이름 없는 존재라 여기며 살고 있다. 남편이 꿈꾸던 이상적 삶에서 그녀는 그저 보조출연자이자 부속품인 것만 같다. 어린 아들과 뱃속의 아기, 다정한 남편이 있음에도 그녀는 다른 세상을 향한 문을 찾고 싶어 한다. 다른 세상에서라면 그녀는 평생 책을 읽으며 보냈을지도 모른다. -p.65 그녀는 우울하고 싶지 않다. 망쳐버리는 건 케이크 하나면 족하다. 실패하는 것 역시 케이크 하나여야만 한다. 마음은 이미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다. 로라 지엘스키로!

그리고 현재, '델러웨어 부인'이라고 불리던 클러리서 본은 연인의 파티를 준비 중이다. 열여덟, 그녀의 청춘은 사랑으로 충만했지만 그에게 새 애인이 생기는 걸 지켜보았으며 이제 꺼져가는 그를 돌보고 있는 오십 대의 여인일 뿐이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댈러웨어 부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그 여름날의 높은 둔덕 위에 서 있을 것이다.-p.196 남들 눈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녀 역시 그녀의 삶이 그녀만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과거의 어느 순간들을 부여잡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순간들을 그리워할 때마다 마음은 초라해질 뿐이다.

<디 아워스>는 영화를 먼저 보길 추천한다. 그래야지만 책 속 문장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영화의 연출이 워낙 훌륭해서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 차오른다. 그렇지만 책을 지나칠 수가 없어 재독을 했다. 재밌는 문장이 딱 걸려든다.

"그러니까 침대에 들어올 거지?"

"네."

그녀에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멀리서. -p.314

남편의 요구가 얼마나 싫은지 단번에 알겠다. 왈왈.

정신이 멀쩡한 클러리서는 런던을 사랑하고, 자기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계속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어느 미치광이 시인은, 어느 몽상가는 죽음을 택할 것이다.-p.310

리처드는 버지니아와 닮아 있다. 버지니아는 댈러웨어 부인을 죽이지 않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살한다. 남편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리처드는 클러리서를 댈러웨어 부인이라고 불렀지만 그녀를 놓아주기 위해 자살한다. 한때의 행복했던 순간을 간직한 채. 버지니아는 댈러웨이 부인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두고 이런 생각을 한다. 한 존재가 살아 있을 때 차지하는 공간이 죽었을 때의 그것보다 얼마나 더 큰지. -p.246

이 소설은 각기 다른 시공간에 사는 세 여인의 하루를 담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그렇기에 철저히 세 여인의 삶만 들여다보아야 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리처드나, 버지니아에게 최선을 다하던 남편까지 챙기다 보면 감정이 너절해진다. 그녀를 기억해? 또 다른 당신 말이야. 그녀는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p 294 라고 말하는 리처드의 슬픔까지 생각하면 브라운 부인은 이기적인 년일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자기만의 방이라고 겨우 들어온 곳이 호텔 방이지만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는 변명이 덕지덕지 따라붙는다. 죽음은 간단하지만 자신의 삶을 더 사랑했음을 깨닫고 차선을 택한 그녀에게 공감해야 한다. 우리는 그녀의 슬픔이 평범한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p.303

수많은 선택지에서 방황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지에서 고통받고 또 그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누군가는 그 평범한 하루조차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게 인생이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팔십이 된 로라는 이런 말을 한다. 여자로서의 삶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자신의 선택에 조금은 뻔뻔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꽃이 피고 지듯 우리의 순간들도 그렇다. 이 지금의 시간을 살게 해 주는 것들이 그런 평범한 기대감이 아닐까. 시간은 흐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며 언제 끝날는지도 미지수다. 그러니 내 앞에 놓인 그 시간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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