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터머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스텀 280의 유리 문을 민다. 나는 플라스크에 담긴 눈알을 본다. 동물 눈알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그 옆 진열대에 주르르 놓여 있는 인간 눈알의 샘플 하나를 가리킨다. 이거 하나 붙여 주세요. 이마에다가.

<커스터머>속 세상은 그런 것쯤은 귀걸이나 코걸이를 걸듯 뚝딱할 수 있다. 메타버스 속 아바타가 아닌 자신의 신체를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 눈 색상은 물론이고 모양까지 바꿀 수 있으며 팔을 호스로 바꾸거나 피부색을 바꿀 수도 있다. 뿔을 달거나 날개를 달 수도 있으며 어깨에서 꽃이 피어나게 할 수도 있다. 놀랍도록 기술은 진화해서 무엇이든 가능하다. 생명체의 진화는 끝난지 오래이고 이제는 변형이 대세인 시대다. 생물과 무생물 안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강아고양이는 over지만 움직이는 돌맹이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반면 이런 유전자 변형으로 생긴 돌연변이도 있다. 요기까지만 생각하면 와~~ 멋지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세상이 한번 뒤엎어지고 난 후 인간들은 더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똑같이 살아남았음에도 어떤 계층은 죄책감에 억눌려 있고 어떤 계층은 분노에 억눌려 있다. 공부를 잘해야지만 빛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모래바람만큼 갑갑하다. 그만큼 고착화된 계급 문제를 해결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화합은커녕 어딘지 모르게 상당히 불안정해 보이는 세상이다. 재건의 날이랍시고 행하는 의식 자체도 오히려 그날의 아픔을 부채질하는 듯 불편해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노력은 한다. 통합 교육 정책이 그런 의도였으니까.

인간은 날씨 하나에도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존재다. 그만큼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 되는 것도 있다. 수니가 사는 웜스구역은 전 세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어대는 모래바람을 감당할 수 없다. 모래가 가득한 도시에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지끈거리고 깝깝하다. 그런 수니에게 태양시의 고등학교 통지서는 빛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입장권이 아니고 무엇이랴.

수니의 삶을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고등학교 입학을 그 경계지점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만큼 수니는 엄청난 성장을 이룬다. 커스터머는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다름에 관하여'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수니는 그토록 원하던 커스텀을 한다. 룸메이트 안을 향한 사랑과 어느 날 이마를 뚫고 나온 뿔에도 당당하다. 수니의 용기는 태양시의 진짜 햇빛이 만들어낸 것일까. 모래시의 억압이 만들어 낸 것일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지금보다 더 잔인하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고 나눈 거 자체가 아이러니지만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이들을 향한 비난이 도를 넘는다. 모든 건 인간의 과한 욕망 때문에 생겨난 결과임에도 커스터머를 혐오하고 돌연변이를 저주라 여긴다. 비단 인간의 비난 욕구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성인으로 태어난 사람들까지 인류의 해악으로 여긴다.

비마저도 다양한 이름을 지니는게 세상인데 사람들은 존재의 다양성을 불편해한다. 어째서일까. 모래 색깔에 맞춘 건물들 사이로 파란색은 그저 튀는 색이자 거슬리는 색일 뿐이다. 어째서일까.

참 성가시다. 이런 것들에 의문을 가져야 되는 일이. 희망과 유대는 은밀한 조롱과 불쾌한 속삭임에 껍데기로만 존재한다.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건 커스텀이 아니다.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건 차별과 혐오, 선입견과 조롱, 비난과 원망 등의 감정들이다. 지금도 뿌리깊게 내려진 이러한 감정들이 힘든 팬데믹 시대를 갉아먹고 있지 아니한가.

한낮의 열기와 저녁의 서늘함, 비가 내린 후의 촉촉함, 다시 해가 뜬 후의 맑은 마름. 이런 날씨를 누릴 권리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 구역 안에서 누군가에겐 과한 빛을 누군가에겐 어둠과 그늘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 수니는 중성인인 안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안다. 그처럼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들기 전에 경계를 허무는 것부터가 제대로 된 재건의 시작이 아닐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그 선택을 존중하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