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호에 핀 꽃 사거리의 거북이 16
김춘옥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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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잘 만나 태어나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깔리면 늘 드는 생각 중 하나다. 누군가의 열두 살은 오래전 누군가의 열두 살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시기를 따져보면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고 있는 이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겼다. 나라 잃은 설움을 환희로 되찾은 것도 잠시 다시 이념의 전쟁터로 전락한 한반도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념의 희생자가 되고 외세의 힘에 그어진 38선으로 생이별을 겪은 사람들이 넘쳤다. 지금은 북한과의 외교가 중단된 상태이기에 이산가족 상봉이니 금강산 여행이니 하는 뉴스가 끊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TV에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소양호에 핀 꽃>의 시대적 배경은 그런 민족의 비극을 담고 있다. 그랬기에 지금 세대들에게는 무덤덤해졌을 당시의 아픔을 공감하고 과거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겠다.

가람이는 어느 날 자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머나먼 북쪽 땅에서 말이다. <소양호에 핀 꽃>은 가람이네 할아버지가 그 안타까운 상봉 현장의 주인공이다. 어찌하여 할아버지는 5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서야 증조할아버지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가람이는 할아버지와 방을 나누어 쓰는 사이다. 가람이는 증조할아버지와의 만남을 무척이나 고대하고 계실 할아버지를 위해 가계도를 직접 그려 선물하기로 한다. 그런데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던 가람이는 궁금해진다. 그리고 상봉전 지금은 사라진 마을 구만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때는 광복이 되기 직전부터 6.25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시대로 가람이의 할아버지가 열두 살이던 시절이다.

할아버지의 모습으로만 보아왔던 가람이에게 할아버지에게도 나와 같은 열두 살(준태)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묘하지만 생소한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더욱 낯선 세상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저물어가던 시기였으나 일본인들은 더욱 악착같이 조선인들을 괴롭혔다. 긴 전쟁에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져가고 정신적으로는 무기력해져간다.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아버지로 인해 준태의 마음 한켠은 원망도 서려있다. 반면 승우네처럼 친일파로 전향한 집들은 큰 소리를 치며 같은 동포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기도 한다.

소양호는 구만리와 대흥리 사이를 흘렀고 사람들은 사공의 도움으로 그곳을 오갔다. 구만리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준태와 승우, 난이는 마냥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일 수가 없다. 준태와 승우는 한바탕 쌈질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난이는 승우네 아버지로 인해 아버지가 주재소로 끌려가는 일을 당하게 된다. 이쯤 되면 이 세 친구에겐 우정 따위는 존재할 수 없을 듯 보인다.

그러나 그토록 원하던 해방이 되자 상황이 달라진다. 준태의 아버지가 돌아왔고 친일파였던 승우네는 마을에서 쫓겨난다. 게다가 소양강을 사이에 두고 민족은 갈라질 조짐도 보인다. 준태에게 소양강은 돌아온 아버지와 낚시를 하며 부자간의 정을 돈독히 한 곳이자 난이와의 추억도 있는 곳이었지만 더 이상 소양강은 그런 추억의 강으로 남지 못한다.

"내가 돌아오는 날, 낚시하러 가자꾸나." -p.99

난이 아버지의 말처럼 강물에는 모든 삶이 다 들어있는 듯하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 비극까지도 조용히 떠안고 흐른다. 무심하다고 느낄 만큼. 오래전 준태에게 강은 비극과 막연한 기다림의 장소일 뿐이었다. 그러나 강은 무심하지 않았다. 오래전의 약속을 잊지 않은듯하다. 이제 준태에게 강은 치유의 장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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