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역사
마야 룬데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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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오래전부터 벌의 생태를 연구했고 벌을 길들여보려고 했지만 언젠가부터 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이유는 찾을 수 없고 사라져버린 벌들의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가 가정한 2098년의 세상은 진보의 진보를 거듭한 신문명이 아니라 한차례 큰 붕괴를 겪고 난 세상이다. 끔찍한 식량난으로 인공수분 작업장에 강제 동원되는 인간들은 문명을 다시 일으킬 만큼의 능력조차 잃어버린 모습이다. 어린아이들마저 인공수분 종사자로 길러지고 있었으니 삶의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벌들은 왜 사라져버린 것일까. 과연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벌들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지구는 멸망할 것인가. 벌들의 역사는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책이다. 벌들의 역사라는 제목을 먼저 뽑아놓고 플롯을 구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야기는 서로 다른 연대가 돌아가며 흘러간다.

2098년 인공수분 종사자 타오, 1852년 곤충학자 윌리엄, 2007년 양봉업자 조지.

세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벌과 연관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을 연구하면서 벌통 제작에 골몰하던 윌리엄은 좌절과 재기를 거치며 열정을 쏟아붓지만 시대상 남성형을 대변한 것일까. 가부장적이고 찌질하고 답답하다. 아들아들하다 아들에게 팽당하고 결국 딸 샬롯에게서 희망을 보게 되지만 그의 의지는 네트워크가 활발하지 못했던 시대 탓에 다시 꺼지고 만다.

양봉업으로 먹고 살아온 조지는 CCD 현상 앞에 가업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게다가 과하다 싶을 만큼 아들이 가업을 잇길 바란다. 대출까지 얻어 일을 벌여보지만 사라져가는 벌들로 인해 미래는 속수무책이다. 실제 벌들의 개체 수는 1980년대 이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매년 겨울마다 그 수가 더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군집 붕괴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들을 기반으로 시대를 엮었다고 보이지만 하나로 묶는 데는 실패한 게 아닐까.

어찌 되었든 작가는 타오가 사는 시대를 디스토피아로 그려 강한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을 것이다. 타오는 스스로 벌이 되어야 하는 처지였기에 꽃이 만발한 나무를 보고도 아름다움에 취할 수 없다. 실제 인공수분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벌들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중국에서 더 두드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을 모델로 잡은 것일까. 작가의 참고 서적에도 신중국이란 책이 눈에 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아이에게 원인 모를 사고가 일어나고 아이와 강제 격리를 당하게 된다. 당국은 무언가를 자꾸 감추고 아이의 행방도 알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삐걱대던 남편과의 관계는 서서히 더 멀어져 가고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베이징으로 향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을 기반으로 돌고 돈다.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벌들이 하는 일은 삶을 위한 투쟁이다. 인간이 그들을 길들이고자 한다면 그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다. 벌들이 인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사라졌든 환경오염이나 지나친 문명의 발달로 사라졌든 중요한 건 인간이 그 흐름을 깨트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

타오는 베이징을 헤매고 다니다 뜬금없이 도서관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책 중 <눈먼 양봉사>라는 책은 타오에게 생각의 전환을 던져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보인다.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도 눈먼 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의도처럼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결국 교육과 지식임을 재차 깨닫게 된다. 2098년에 나는 없지만 백세시대로 놓고 보자면 우리 아이들은 살아있을 수도 있다. 타오가 그랬듯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란다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시작은 좋았으나 깊이 따지고 들면 어딘가 개연성이 부족해서 청소년 소설로 적합해 보인다. 책장은 술술 넘어가지만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느낀 이유는 벌들의 생태와 양봉 이야기가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결말 역시 왜라는 의문이 남고 제목이 굳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 없지만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오기에는 괜찮았다고 보인다.

작가의 이름을 보면서 꿀벌 마야가 떠오르는 건 나만 그런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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