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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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이 도착한 날. 으레 그렇듯 대상작만 빠르게 읽고서 작년 작품집 위에 포개어 놓았다. 그렇게 완독하지 못한 채 책탑만 쌓아 올리던 지난해와는 달리 드디어 올해는 완독을 했다.

우선 국문학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 내가 아는 작가라곤 손홍규님뿐이었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란 산문집이 너무 좋았기에 '삼촌이 한 명 있다'로 시작하는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에 호감도가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명 있는 삼촌이지만 가족의 눈에 비친 삼촌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 삼촌은 신세를 망친 탕아였고 다른 누군가에게 삼촌은 세상에 다시 보기 힘든 순정파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삼촌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지루한 소설만 읽게 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원래 삼촌은 그저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끼리 포근한 집을 짓고 살기를 원했던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형수의 생일날 세 사람(형수와 형 그리고 삼촌)이 본 영화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를 고른 건 형수였다. 영화를 고른 이유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특히 형이 남긴 감상평을 보라. 애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저 저돌적이고 일차원적인 감상평에 형수의 우울증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젊은 놈들이 내일이 없다는 듯이 천방지축 날뛰면 비참하게 죽는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멋지게 한탕을 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으려면 치밀하고 완벽해야 한다.


팍팍한 서울살이에 생계형 부부가 되어버린 형과 형수를 보면서 황현진님의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에서의 커플이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사랑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묶여버린 사이 같지만 혼자보단 둘이었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위기는 그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가난에 대한 두려움. 한꺼번에 밀려드는 두려움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견디는 것뿐이다. 위기 속에 사랑만큼은 더 이상 줄줄 새나가지 않기를.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의 마지막 문단을 읽다 보니 각 작품들의 단면들이 스쳐 지났다. '가까운 사람 가운데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분명히 알아볼 것이다'라는 문장을 지날 땐 윤대녕님의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가 떠올랐다. 화자가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 근처 해장국집을 들를 때 문진영님의 <두 개의 방>에서 해장국 한 그릇하자던 그가 떠오른다. 오래된 극장을 찾는 그와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의 유래를 추적하는 그는 어딘지 닮아 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일부가 장례식이었던 두 사람을 보며 부채를 떠안은 듯한 산자의 통증을 보게 된다. 낯선 이들이 주고받는 깊숙한 대화는 뒷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 그 슬픔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그들의 관계를 보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정용준님의 <미스터 심플>에서의 쓸쓸해 보이던 두 남자의 만남 역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거기야말로 삶의 한복판'이고 그곳에서 만난 낯선 관계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 삶의 특별함 아니겠는가.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들과 예기치 못하게 형성되는 관계들 속에 뒤엉켜 살아간다. <완전한 사과>에서는 우습게도 가해자의 가족이지만 그들 역시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들이 감내해야 될 무게감 때문에 생각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가해자의 가족인 '나'에겐 생활이 없고 생존만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삶은 온전해질 수 없고 시간을 돌려보며 놓쳐버린 타이밍을 찾을 뿐이다. '그때 내가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이 낳은 결과의 방향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유사한 상황 앞에서 이번만큼은 그때 하지 못했던 액션을 취하는 것으로 단편은 끝난다. 하지만 그다음 벌어질 상황이 생각만큼 통쾌할 것 같지 않다.

대상작인 <두 개의 방>은 그렇게 끌리던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리뷰가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는데 평범하게 읽은 작품이 한껏 난해해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자와 편집자를 넘어 친구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한 번씩 만나 술 산책을 한다. 그야말로 동네 탐방이다. 이 산책의 재미는 현재 속에서 과거 찾기다. 혼자를 선호하는 나에게 이런 만남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 단편들의 트렌드인가 싶을 만큼 비슷한 분위기가 두드러짐에도 각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얘기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감정들을 만나기도 한다. 전후 사정을 알듯 말듯 ,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속 사정의 내막을 희미한 단서들로 유추할 수 없을 땐 굳이 생각을 한곳에 붙잡아 두진 않았다. 그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기엔 진연주님의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이 편했다. 오히려 끄트머리에서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어서 였을 수도.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것. 아니면 지긋지긋한데 사랑스러운 것. 우리의 삶이야말로 그런 아이러니의 연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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