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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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세계 원유 생산 10위를 자랑하지만 여러 부족간의 다툼과 종교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슬람교(북부)와 기독교(남부)로 나뉘어 대립을 하고 있으며 식민 체재에서 급격한 변동을 겪은 이보족들은 여전히 토착신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96년 1월, 이보족이었던 벤저민 가족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은 그 어이없는 예언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미치광이의 주절거림이 불러온 비극에 고개를 절레절레하다가도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드는 그러한 일들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이 비극의 핵심은 아이들의 덜 영근 영혼 속으로 파고든 두려움이 문제였다. 파멸을 향한 예언의 화살은 정확하게 이켄나의 심장을 관통했다. 이켄나의 운명은 이미 설계되어 있었다. -p.192 분명 보았다. 우리는 그 불행을 이켄나가 쏘아 올렸음을.


미래란 우리가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미래란 상상한 모든 것을 그릴 수 있는 텅 빈 캔버스였으니까. -p.15


폭도와 학살이 난무하는 불안한 터전이라면 희망은 올챙이가 되고 증오는 거머리처럼 기생한다. 불안한 현실을 피해 갈 수 있는 곳은 종교뿐이다. 현실 부정과 종교 밖의 일들이 점점 무관심으로 밀려난다. 생명의 줄이 되어 줄 오미알라강을 버린 것도 그들이었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음험한 소문에 잠식돼 버린 것도 그들이었다. 화자인 벤저민의 아버지가 타지역으로 발령받은 후 여섯 아이들의 삶은 어머니의 손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가 쳐 놓은 안전망이 점점 끊어져 버린 뒤 아이들은 어부가 되어 자유를 만끽했다. 금지된 강에서 행해진 그 단순한 놀이에 끝없는 기쁨과 충실한 열성만 가득했다. 들키기 전까지.

1990년대 그 살 떨리는 나이지리아의 경제 속에서 아버지의 꿈은 거창했다. 아버지가 그린 아이들의 미래는 서구식 교육에 걸맞은 직업인으로 점쳐져 있었다. 그런 꿈과는 전혀 상반된 어부라는 단어가 주는 야만성에 모멸감을 느낀 아버지는 채찍을 휘두른다. 아버지가 원한 건 그런 어부가 아니었다.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닌 성공이라는 대어를 낚는 어부.

우리는 위협적이다.

우리는 거대 조직이다.

우리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p.54

아이들은 불완전한 존재다. 게다가 미약하다. 아버지의 채찍질은 엉뚱한 복수심을 낳고 아불루의 예언은 이켄나를 불안의 광기로 내몬다. 한낮 미치광이에 불과했던 아불루의 헛소리가 지나가는 비행기 소음에 완전히 묻혀버렸다면 미래의 캔버스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귓속으로 들어온 말들은 달팽이관을 지나 이켄나의 정신을 지배해 버렸다. 자신의 비참한 죽음이 두려웠던 나머지 두려움의 근원을 향한 분노가 결국 한 가족의 미래를 망쳐버렸다.

예언대로 끝났다. 작가는 한 가족을 무너뜨림으로써 광기의 처절한 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낱 미치광이에 불과한 아불루를 리바이어던으로 만든 건 그들이었고 두 아이의 죽음으로 끝났어야 할 불행의 불씨가 다시 오벰베과 벤저민에게 옮아 붙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했다. 두 아이가 다시 어부가 되어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갈고리를 보며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말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벤저민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나방이 되었고 데이비드와 은켐은 무해한 왜가리가 되었다. 어리석은 광기에 휩쓸려 찢겨버린 가족들의 모습에 착잡함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광기에 눈이 멀어버린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런 상흔을 남겼는지를 보았다. 신들이 파괴하기로 선택한 자에게 광기를 안겼다면 살기로 선택한 자들에겐 희망을 안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 남은 무해한 아이들로 인해 회복이라는 가능성의 에너지를 찾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에너지가 서로를 굳건하게 지탱해 줄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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