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 브로디는 1930년대 초 마샤 블레인 여학교 선생으로 재직중이었다. 그녀는 40대 초반의 독신 여성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과시하며 스스로 열린 교육을 지향하는 참교육자라고 여긴다. 노골적으로 선생이 아이들을 선별해서 무리를 만든 건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지만 학교에서 진 브로디 선생을 주축으로 한 브로드 무리를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은 이 위험한 브로디 선생을 따라 안전한 느릅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섰다. -p.15

근대와 현대 사이에서 오는 괴리와 혼란함이 진 브로디 선생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어쩌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충성과 배반도 혁명의 과도기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1930년대는 성별에 따른 노동의 차별이 심해지는 시기였으며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여성의 지휘가 상승하던 시기이자 전쟁 전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던 시기였다. 그러니 진 브로디 선생같이 진취적이고 독립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가능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생겨난 전체주의는 여성들의 지지를 얻고자 달콤한 말로 여성들을 꾀어낸다. 진 브로디 선생의 파시스트 옹호가 이해될 수밖에. 브로디 무리를 전체주의라고 본다면 브로드 무리들에게서 그 허상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았다.

특이한 건 이름 앞뒤로 따라다니는 꼬리말이다. 이는 무리 속에서 각자의 색채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사주팔자를 보는듯해서 재밌다.

성적 매력으로 유명해질 로즈 스탠리, 돼지 눈같이 작은 눈을 지닌 샌디, 미모로 유명해질 제니,

아둔함으로 유명하고 언제나 욕을 먹던 스물세 살의 나이에 호텔 화재로 죽게 될 메리 맥그레거, 산술 능력이 뛰어난 모니카 더글러스, 체조 실력과 수영 실력이 월등한 유니스 가드너, 전학생으로 무리에 끼고 싶어 하는 조이스 에밀리. 그렇게 '브로드 무리'들은 튀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렇다면 진 브로디 선생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여학생들이 추종할만큼 신여성이자 진정한 교육자였을까.

통찰력이 뛰어난 샌디를 주축으로 무리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진 브로디 선생의 행적을 보면 그녀는 열린 교육을 지향한답시고 아이들에게 생활형 교육을 했다. 자신의 일상, 연애담, 미용, 예술 등 수업외의 것들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운다. 자신은 밀가루 반죽을 부풀릴 효모 같은 역할을 할 것이며 자신을 따르기만 하면 크림 중의 크림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저 나만 따라해~^^

자신의 전성기를 거들먹거리며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교양인임을 자처한다. 이미 학교장은 그녀가 탐탁지 않아 쫓아낼 구실을 연구 중이지만 브로디 선생은 언제나 한 수 위다. 하지만 오를 대로 오른 자존감은 자만심으로 변질된다. 브로디 선생은 점점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행동을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은 끄집어내는 교육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던 셈이었다.

내 선생님. 교양 넘치는 여자였지. 그 여자 자체가 에든버러 축제나 다름없었다고나 할까. 자기 아파트에 불러 차를 내주고 전성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

..

하지만 미친 사람은 아니었어. 미치긴, 말짱했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연애 이야기도 전부 해줬거든. -p.36


무리가 주는 희열감은 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진 브로디 선생의 모든 것들이 소녀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중에도 '의심'이란 감각이 유독 발달한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무리 중에서 통찰력이 뛰어났던 샌디는 진 브로디 선생의 허상을 마주한다. 샌디는 중등부 과학수업과 브로드 선생의 수업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고 도덕적 판단 앞에서 갈팡질팡한다. 한 무리의 파시스트를 보며 우리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혐오감이 일다가도 그마저도 브로디 선생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렇지만 결정적 진실이 드러나고 만다. 훗날 수녀가 된 샌디는 그의 에든버러와 다른 사람들의 에든버러가 달랐음을 깨닫는다.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이제 끝이 난 것 같아. 계속 누가 자기를 배신했는지 알고 싶어 하거든. -p.167

대부분 인생의 가치관은 청소년기 때 형성된다. 샌디가 좋든 싫든 자신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람을 진 브로디 선생이라고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러하다. 브로디 선생을 향한 반항이든 질투든 미술 선생과 연애를 하고 수녀가 되어버린 샌디가 여전히 그녀의 영향력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의 열정이 결국 삐딱한 방향으로 흘러간 듯 보이지만 자유롭던 그녀의 삶은 확실히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누가 크림 중의 크림이 된 걸까.

샌디?!

로이드 선생이 그리는 그림마다 브로디 선생이 보인다고 말하는 샌디. 브로드 무리를 그린 그림에서조차도 브로디 선생 하나로만 보인다고 말하는 샌디. 그만큼 브로디 선생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전성기를 맘껏 드러내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배신자를 색출하지 못한 억울함이 남아 있어 보인다.

샌디, 언젠가 넌 선을 넘고 말거야. -p.31

하지만 난 배신자가 나오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 -p.52

누가 날 배신했는지 알면 좋겠는데. 내 제자 중 누군가 날 배신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야. -p.79

언젠가 넌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고 말거야.-p.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