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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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그것도 젊은 여성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 책부터가 아닐까 한다. 이 년전 독서모임 때 읽었던 책인데 쓰다만 리뷰를 정리하느라 다시 펼쳤다.

지구에게 인간은 그다지 좋은 생명체는 아니다.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은 지구의 멸망보다 기술진보가 우선이었다. 저 어딘가 우주의 질서를 관리하는 어떠한 존재는 지구가 위기를 눈여겨본다. 그 사실을 알았던 저 어딘가의 외계 생명체는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지구별에서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p.102던 한아에게 반해버린다. 어쩜 이리도 로맨틱할 수가.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환경에 관한 이야기이고 어리석은 인간을 비판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요즘 워낙 환경이 이슈다 보니 부쩍 그런 점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한아가 하는 일(리폼),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탄소, 고래, 친환경 주택, 비건 레스토랑 그리고 한아가 우주로 도망친 경민을 향해 내뿜던 욕지기들)들 속에서 작가의 지구 사랑을 만나게 된다.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하지만 첫 번째로 널 보고 널 생각한 건 나였기 때문에 내가 온 거야.

-p.101


그는 무려 2억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한아만을 위해 날아왔다. 다행히 끈적이지도, 발이 많거나, 촉수가 있어 혀를 날름거린다거나, 눈이 하나이거나 하지 않은 초록빛을 가진 생명체로 한아 앞에 등장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의 몸을 빌려. 한아의 솔직함에 빵 터졌다. 그러게 이왕 올려믄 정우성으로 오지. 하필.ㅋㅋ

한아에겐 11년째 남친으로 지내오고 있는 경민이 있다. 그는 불쑥 캐나다로 별을 보러 갔다가 별일인채로 돌아왔다. 무심하던 경민의 유심한 행동들과 바뀐 식습관과 사라진 흉터 그리고 경민에게서 언뜻 보았던 이상한 빛. 한아는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숫자를 누른다. 111.

국가정보원 요원 정규와 아폴로의 실종의 단서를 추적하던 주영은 경민의 정체를 알아내려다 마주치게 되고 그 시각 경민은 자신의 존재를 한아에게 고백한다. 진짜 경민이 한아 대신 우주를 택했다는 사실에 한아는 분노하지만 경민을 대신한 외계인의 다정함과 섬세함은 한아의 마음을 움직인다.

어느 날 돌아오지 말았어야 할 경민이 돌아왔을 때 그를 비난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 헤아려진다. 경민은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았다. 그전에도 그의 마음은 사람이 아닌 대상을 향하고 있었다. 현대인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처럼 들려서 안쓰럽다.

주영에게는 자신보다 더 열정을 불태우던 존재가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곧 자신의 세계였던 주영은 가수 아폴로가 실종된 이후 그를 찾는 일에 모든 걸 건다. 결국 우주로 날아간 그녀의 끝은 해피엔딩이었지만 그처럼 종교, 이념, 신념이 만든 세계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한 열정이 타인의 행복을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응원한다.

외계인 경민이 한아를 선택한 이유를 곱씹어 보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지구를 위해 한아와 같은 다정함을 가지라는. 말로만 걱정 말고 실천의지를 불태우라는. 그러면 우리의 지구 역시 랄랄라 하고 계속될 것이다.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 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p .217 ​

p.s) 유독 ​장르문학에 상이 야박하다. 어슬러 르 귄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야 한다는데 나도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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