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을 두드리다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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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사랑>을 덮자마자 구매한 장은진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단편집인지도 모른 채 제목만 보고 선택했는데 일곱 편의 이야기를 읽은 후의 느낌이라면 인간은 지독하게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한다는 것이다. 그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기 위해서 비도덕적인 순간을 이용하거나 즐기기도 한다. 내가 예전처럼 FM대로 각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욕 한 바가지 퍼부어댈 인물들이 더러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단편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빈집을 두드리는 이유>속 주인공이 바깥을 향해 돌을 던지는 행위에 대해, <페이지들>속 주인공이 책 속 페이지를 찢는 행위에 대해, <찾아가는 도서관>속 주인공이 유기견을 잡아다 도살자에게 넘기는 행위에 대해 나름의 변명을 찾게 된다.

전도 유망했던 투포환 선수였던 '나'는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하여 점점 괴팍해져 가고 있다. 남의 집에서 개를 돌봐주며 빈집을 지킨지도 한 달째.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면 돌을 던지는 일과 말라뮤트를 골려먹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의 신경이 깨어난다. 그녀는 그들이 <빈집을 두드리는 이유>를 모아 모아 집주인의 실체를 추리해간다. 그녀인 줄 알았는데 그였던 그를 사려 깊은 사람으로 둔갑시킨 이유가 엉뚱스럽지만 미운 오지랖이라고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가 걱정이 되었기에.

다이어트를 결심하며 줄어든 장바구니에 대신 돌멩이를 채워 온 '나'는 다시 던진다. 고요한 일상과 편견에 찌든 세상을 향해.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이들의 고충은 얼마나 클까. <나는 나를 가둔다>에서 '나'는 그 잠이라는 행위에 도달하지 못해서 수면 체험실을 찾는다. 판화가인 그에게 꿈은 곧 돈이다. 꿈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다. 그는 꿈속에 자신을 가두는 일을 즐긴다. 희한하게도 그가 특정한 방에서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자 오로지 혼자만의 행위인 이 잠이라는 것도 음양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었나 의구심이 든다. 어쩌면 주파수가 맞는 상대를 만난 건지도.

아버지의 눈밖에 나버린 '나'는 지붕에서 머물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던 티슈의 정체에 호기심이 인다. 그에게 멀쩡히 흩날리는 티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된다. 티슈와 함께 화단으로 몸을 던진 '그녀'가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가버린 전처를 떠올린다.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덕에 '나'는 위로와 용서와 이해가 작용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방법이 없어서 지붕에서 지내던 그는, "누가 방법을 알려준다면"이라는 문구를 외면하지 못한 순수한 오지랖 덕에 티슈처럼 마음이 가벼워질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삶의 방법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사람이므로, 그래서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알려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쉽게 생각하고 비난하고 감싸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 주는 것뿐이다. -p.97


자살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찾아가는 도서관>을 운영 중인 '나'는 그다지 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애초부터 그의 목적은 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떠돌이 개를 잡아 팔아치우고 차 안에서 성욕을 해소하는 역겨운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차 안에 어린 비글을 버리고 간다. 그의 양심이 꿈틀댄걸까.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도살업자를 찾은 그는 애초부터 책이 목적이 아니었다던 그의 말에 정곡을 찔린다. 그렇게 찾으려던 목적은 이루었지만 정작 찾아주어야 할 유서는 전하지 못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만남에 반전이 있을 줄이야.

<나쁜 이웃>은 참말로 뜨끔하다. 어쩜이리도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예리하고도 흥미롭게 끄집어 냈을까. 고독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하에 신고를 감행한 그녀와 이웃 주민들, 그리고 경찰과 열쇠수리공 등의 속마음이 재미나게 드러난다. 중요한 건 할머니의 죽음이 아니다. 각자의 역할이 중할 뿐이다. 그녀에게는 체면이 더 중한 것이고.

책을 찢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분노가 일던 <페이지들>에서는 책의 중요한 페이지를 찢은 뒤 자신의 연락처를 남겨 놓는 것에 의미를 두던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어떤 이유였든간에 그렇게 연락오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만난 <페이지들>과의 만남이 무모해 보이지만 신선한 구석도 있다. 어쩌면 당장에 멱살을 잡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다가도 호기심이 발동하게 될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도 통하지 않는 자가 있었으니 호감 가던 그녀에게는 반전의 결과를 선사하고 만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년이 있을 줄이야.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달라고 부탁하는 P는 말로 일기를 쓰는 게 취미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P앞에 <나무인형>같은 떠돌이 책방 주인을 발견하고는 미친듯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책방을 차려놓은 채 하루종일 죽어라 책만 보는 그녀의 사연이 기구? 해서 ㅋㅋ 안쓰러운 것도 잠시, 헤밍웨이를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모를 수도 있지 않나?

암튼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진짜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여자는 이제 P의 역할대행 도우미가 된다. 일기장이라는 역할을.

역할 대행 도우미의 삶을 살던 P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못한 자신이 후회스럽고 이제는 정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인물들이 갈구하는 외부로의 세상.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문을 두드리고 있음을 보았다. 마지막 단편의 P처럼 좀 더 적극적이고 귀여운 두드림이라면 나도 귀를 기울여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표지그림처럼 두드렸을때 열릴 세상이 저렇게 시원한 바다만 같다면 또 얼마나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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