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황인숙 지음 / 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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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고양이를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상대는 맘줄 생각도 안 하는데 매번 먼저 인사를 던진다. 간혹 몇 번의 간식으로 안면을 튼 녀석들은 가끔 뻔뻔하게 들이대서 날 당황하게 만들 때도 있다. 왜 꼭 그럴 때마다 간식거리가 없는 건지.....

 

며칠 전에 재미 삼아 해 본 '나에게 어울리는 동네는?'이라는 유형 테스트에서 얼토당토않게 청담동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내겐 촌자가 들어간 동네가 어울릴듯한데 청담동이라니.ㅋ 저자 황인숙 님은 해방촌에서 길냥이들의 밥그릇을 책임지고 계신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해방촌에서 보내면서 저자에게 늘어만 간 건 끈끈한 연민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와 집들, 가난하지만 그 속에서 한 끼의 정을 나누던 사람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변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길냥이를 향한 시선이다. 이게 투철한 애묘심보다 더 투철해야 하는 게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저자의 말처럼 치졸한 냉혹함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시인의 시나 글은 잘 몰라도 자동 존경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건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 얻는 기쁨도 크겠지만 저자의 선행은 결코 자기만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된다. 그렇다 보니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비슷하게 닮아간다. 고양이를 싫어하고 힘들 일을 싫어한다던 친구조차도 그런 친구의 노고를 마냥 외면하지 못했듯이. 로또가 당첨되면 고양이 밥 주는 알바를 쓰겠다는 작은 소망에 피식 웃게 된다. 비록 로또의 행운은 어디론가 실종되어버렸고 인생은 불그죽죽한 궁상 같지만 내가 내민 손길이 어디선가 부메랑이 되어 행운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것만 같은 야릇한 기분을 우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말 가까운 곳에 거주한다면 그 피로를 덜어드리고 싶다.^^ 좋은 일은 나눌수록 좋은 법이니까.

 

언제부턴인가 비 오는 게 싫다. 그토록 좋아했는데 꺼리게 된 세 가지, 눈과 비와 긴 계단. -p.28

 

띵동! 안전 문자 소리다. 코로나 소식이 아닌 대설주의보 발령이란다. 뜨아~~~ 이번 겨울은 왜 이리 혹독할까.(허나 저자가 지나온 겨울은 똑같이 혹독했다.ㅎ 겨울은 늘 추웠던 게야.) 기후 위기 때문이라 죄인처럼 할 말은 없다만 떨어지는 기온에 내 맘도 한없이 무겁다. 올해는 유독 더 한파가 기승이다. 보일러 온수배관이 언 적은 나도 첨이었으니까. 도저히 이 추위를 그냥 무시할 수가 없다 보니 오지랖만 늘었다. 일단 이 겨울은 넘기고 보자 싶어 매일 밥동냥하러 오던 녀석을 사무실에 가뒀다.(녀석의 의견을 반은 무시했으니 미안하지만 가둔 게 맞다.) 겨울만 지나고 원하면 언제든지 가도 좋다는 전제하에 돌보기 시작한 지 3주가 지나고 있는데, 요 녀석 당분간은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행히 원래 있던 녀석들하고는 서열정리도 돼가는듯하고.^^ 봄 내음이 퍼질 때쯤 녀석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대게 자정이 지난 시간에 동네를 한 바퀴 돈다. 한 손에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빈 그릇들과 물통이 들어있는 부직포 가방, 다른 한 손에는 고양이 사료와 간식들이 들어 있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p.57

 

한 해를 넘기고 못 보던 길냥이를 다시 보게 되면 눈물 나게 반갑고 살아줘서 고맙다는 마음마저 든다. 저자도 그런 경험을 옮겨 놓았다. 몇 해를 보다 못해 구조까지 시도하다 실패하고 거의 죽기 직전의 고양이를 울면서 따라갔건만 싸가지 없는 여인네 때문에 마음이 쓰겁다. 에잇! 이 몹쓸 인간아!

내 삶은 확실히 길고양이들 밥을 주기 전과 후로 갈렸다. -p.146는 저자의 말을 곱씹어 보면 그만큼 더 내공이 쌓였다는 뜻일 것이다. 따가운 시선과 긁어대는 말투에도 버럭 하지 않을 인내심. 이건 진짜 대단한 내공이다. 팔자소관이라고 쑥덕대고 끈질기게 밥그릇을 치우는 인간들도 있지만 저자는 그보다 더 단단해져만 간다.

 

가끔 들르는 고양이 가족이 있다. 이미 따뜻한 분이 돌보고 있는 아이들인데 오가는 길목에 있어 나도 가끔 들여다본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고양이 밥그릇 주위에 까치들이 모여 밥도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고양이 밥을 주다 비둘기들이 꼬여 고생을 치렀다는 저자의 일화가 떠올랐다. 저 녀석들을 쫓아버릴까 하다 내버려 두긴 했는데 저러다 더 많은 애들이 몰려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고양이는 물을 자주 마셔야 되는 동물이다. 겨울엔 부어 놓은 물이 꽁꽁 얼어버리는 일이 잦아 더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생각처럼 뚝심을 발휘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유독 이번 겨울 동안 동사한 길냥이가 많다고 한다. 아직 겨울은 더 남아있고 이 추위를 나지 못하는 애들이 더 있을 것이다. 길냥이들의 쉼터에 따스한 시선과 온정을 베풀어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평범한 나날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자도 도무지 출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 문장이 유독 와닿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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