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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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 해도." -p.49

이 책은 오래전 남편이 반쯤 읽다가 덮어 둔 책이다. 재밌냐는 물음에 글쎄...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네.라는 짧은 대답이 끝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남편은 감정이 단순하다. ㅋㅋ ) 단편 모음집이란 얘기도 일언반구 없었기에 나도 책을 펼치고서야 단편집인 걸 알았다. 하루키 월드 진입 계획을 잡아놓고 첫 스타트를 끊은 책치곤 나쁘지 않다. 출간 순서대로라면 이 책을 먼저 읽었어야 했지만 <일인칭 단수>를 먼저 읽은 점도 한몫한다. 그의 책이라곤 아직 에세이와 단편집이 전부지만 조금은 하루키 느낌을 알 것 같다. 유독 그의 글엔 추억 돋는 요소(음악, 물건)들이 제법 등장한다. 그리고 현실과 환상 속을 애매하게 맴도는 분위기도, 사건을 마주하는 미스터리한 감정들도 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우스갯소리로 남자들은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혼자 사는 여자보다 혼자 사는 남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처량함과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건 왜일까. 그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남자들은 유독 여자들에게 집착한다. <그레고리 잠자>편에서 인간으로 변한 잠자가 여자를 보자마자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처럼 남자들에게 있어 성욕은 본능이다. 외모 따윈 상관없다. 더 과하게 말하자면 남자에게 여자는 식욕과도 같다. <독립기관>편 등장했던 남자가 사랑하던 여자를 잃게 되자 거식증에 걸려 죽고 말았던 것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소통의 부재로 인한 오해로 상처를 받거나 분노한다. 벌어진 간격을 방치하면 할수록 감정은 위험해진다. 다행히 단편 속 남자들은 그나마 심성이 곱다. 여자들의 배신에 나름대로 극복할 무언가를 찾는다. <드라이브 마이카>편에서 한 부부는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고 아내는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외도를 일삼는다. 그런 아내를 그냥 묵인하던 남자는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이유를 묻지 못한다. 아내를 향한 원망과 의문 때문에 외도남에게 접근하던 지질함까지 보였던 남자는 그를 통해 그 이유를, 그리고 아내를 이해해 보고자 했지만 그가 정작 아내를 이해하게 된 대상은 그의 운전기사였다. 운전만큼은 여자를 믿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믿음이 갔고 그녀의 결정적 한마디로 더 이상은 자신을 속이고 살지 않아도 됨을 깨닫는다.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그건 병 같은 거예요.' 어쩌면 그가 아내를 사랑했음에도 외도를 눈감아 준 데는 이미 그자신도 아내의 상태를 이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것이 거짓이든 변명이든.


상처받은 한 남자의 외로운 여정에 연민이 일었던 <기노>편은 가장 여운이 오래 남았다. 아내의 외도를 눈앞에서 목격한 남자(기노)는 분노는커녕 원망의 몸부림도 없이 상황을 정리한다. 시간이 흘러 이혼 절차를 위해 얼굴을 마주하지만 아내의 일방적 사과와 변명을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속에 담긴 체념의 뿌리가 너무 단단해 보여서 앞으로 이 남자는 얼마나 많은 체념 앞에 무릎을 꿇고 살아가게 될까 걱정스러워졌다.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차인 그. 누군가의 감정에만 맞추며 살았던 그. 이제 그는 그를 둘러싼 무수한 양의적 감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돌보며 살아야 한다. 그런 깨우침을 준 건 잠시 가게 문을 닫고 떠나라던 의문의 남자였다. 어디든 떠나서 오로지 받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만을 쓴 그림엽서로만 안부를 전하라던 그. 그는 그의 뜻대로 여행지에서 엽서를 쓰다 불현듯 세상과의 단절감에 소스라치게 놀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감각을 비로소 열어젖힌다. 오로지 나만의 것들을. 기억은 여러모로 힘이 된다. -p.270 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다시 제대로 잊고 용서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여자를 잃었던 남자 중에 제일 크나큰 깨달음을 얻은 이가 기노가 아닐까.



반면 여자를 잃자 삶을 놓아버린 <독립기관>편의 한 남자의 생도 지나칠 수가 없다. 사랑만큼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그 누구의 남자가 되길 거부했기에 그의 대상들은 한낱 스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감정만큼은 지나치게 스스로를 통제하고 절제하며 살아왔던 이 독립적인 남자에게 균열이 생긴다. 인간은 로봇이 될 수 없다. 사랑이란 감정을 얕보았던 그가 결국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놓아 버린다.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남자의 말로를 보며 거짓된 사랑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어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우습게 여긴 죄. 어쩌면 그도 그의 운명을 미리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지독한 함정이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따윈 할 수 없는 짓이다.


지나친 친밀감으로 인해 더 이상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한 커플이 등장하는 <예스터데이>편은 그녀의 꿈속 이야기를 형상화한 표지 그림 덕에 기억에 남는다. 예스터데이 노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들어지게 소화하고 현지인처럼 사투리를 그럴싸하게 구사할 만큼 자신감 넘치는 재주를 지녔음에도 그녀를 품는 데는 너무나 서툴렀던 남자.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고 사랑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어제를 만드는 것도 결국 나 자신임을 여실히 보여준 단편이었다.

어제는 / 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 -p.113



하바라에게 성교할 때마다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던 <셰에라자드>편은 잠시 사랑이란 병에 집착했던 한 여인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냥 그녀가 하자는 대로 몸을 내어주는 하바라라는 남자보다 짝사랑이 낳은 아슬아슬한 집착과 현재의 일탈. 전생에 칠성장어였다고 고백하는 이 도무지 설명이 안되는 여자의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녀의 끊어진 이야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하바라 그도 똑같이 느낄테지. 그녀와의 친밀한 시간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거라는 슬픔. 그렇다면그는 슬픈 칠성장어로 남을 것인가.

새벽 한시, 오래전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을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되는 <여자 없는 남자들>편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여자 '엠'과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그전에 그녀가 절반을 잘라 건네주었다는 지우개때문에 짧은 단상이 떠오른다. 아이들 숙제를 봐주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많던 지우개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 걸까 하는. 사도 사도 자꾸만 잃어버리는 지우개. 닳아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지우개처럼 그녀도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도 잊었다. 잊고 지낸 그를 다시 깨운 그녀의 부고 때문에 그는 이제 스스로를 여자 잃은 남자들에 편입시킨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듯 잠깐 한눈판 사이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누군가는 떠나버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에 얼마나 충실했냐 하는 것이다. 떠나버린 그녀에 대한 마음이 잃어버린 지우개와 같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남편이 굳이 그에게 엠의 부고를 알린 이유는 뭘까. 분명 엠에게 그의 존재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그녀의 안녕을 비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다. 그것은 그의 손에 남겨진 지우개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감정의 치유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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