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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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년 전 드라마를 보다 만났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인상 깊게 보던 드라마가 감우성, 손예진 주연의 <연애시대>였다. 당시 감우성 팬이기도 했고.ㅎ 요즘은 티비와 별로 친하지 않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다시 티비앞에 앉힌 건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낸 감우성 때문이었다. 책의 제목과 드라마 제목(키스 먼저 할까요?)은 별로 통하는 느낌이 없지만 책 내용과 드라마 제목은 뭔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 드라마도 몇 회를 보다 말아서 결말은 알 수 없으나 감우성(손무한 역)이 잠 못 들던 김선아(안순진 역)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던 장면은 달달하게 남아있다. 외로움에 목말랐던 두 사람이 밤에 영혼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감성 돋기도 했고.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스스로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알고 봤더니 온통 말라죽은 것만은 아님을 발견하는 것. -p.59

 

자식들이 다 떠나고 덩그러니 노인들만 남은 집. 더군다나 반려자 없이 혼자 남겨진 상황이라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무료함과 싸우고 외로움을 견디는 것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작되는 이 이야기는 한 노인이 이웃집 노인을 찾아가서 자신과 함께 가끔 밤을 견뎌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물론 그냥 나란히 누워 서로의 온기만 공유하자는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책이라는 점이 떠올라서였을까. 사회적 관습과 억눌린 시선으로부터 당당하고 싶으셨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양보다 훨씬 연애관이 자유로운 서양조차도 결말은 그렇지 못했기에 씁쓸했지만.

 

루이스는 애디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이 걱정스러워 뒷문으로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은 누군가의 사생활을 입에 담기 좋아하는 작은 시골마을이기 때문이다. 가십거리로 심심풀이 땅콩이 되고 싶어 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허나 애디는 당당히 앞문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이제 벗어던지라는 말과 함께.

 

애디의 용기와 믿음을 믿게 된 루이스는 낯섦을 극복하고 그녀와 함께 하는 날을 늘려 나간다. 이상한 하루에서 편안한 하루가 되기까지 그들은 서로가 살아왔던 시간과 가족이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사연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내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애디가 더 이상 남의 시선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유도, 루이스가 남들의 시선에 조금은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듯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애정으로 메워가는 동안 이웃사람들뿐 아니라 각자의 자녀에게까지 따가운 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응원하는 이웃도 있다. 나는 못해요. 이 나이에 어떻게 -p.67

 

게다가 애디의 아들의 이혼 위기로 손자가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두 사람은 공동육아에 돌입하며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그 좋았던 시간은 애디의 아들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보이는 것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 인생도 어쩌지 못하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아들놈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엄마의 인생을 멋대로 하려는 건지.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다.

 

나는 이 물리적 세계가 좋아요. 당신과 함께 하는 이 물리적 삶이오. 대기와 전원, 뒤뜰과 뒷골목의 자갈들, 잔디, 신선한 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당신과 함께 누워 있는 것도요. -p.141

 

물리학을 이해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경이롭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저 문장이 더 와닿는다. 애니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 루이스가 함께 들어와 있는 것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 물리적 세계에서 한발 물러나버린 건 애디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안 좋았다. 아픈 게 아니라 짜증이 났다. 결말을 탓하기 전에 이게 우리의 현실이란 사실이 더 맘 아프다. 왜 우리는 꼭 그 나이에 다다르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걸까. 노년의 삶과 더불어 사고의 편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랑이란 모험에 나이의 제한이 어디 있으며 부모나 자식은 서로의 인생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왜! 무슨 자격으로 행복을 빼앗는가.

 

애디가 이웃집 남자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얼마나 고심을 했을까. 오랫동안 주변의 시선을 깜쪽같이 속여 왔던 애디가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았겠지만 손자 때문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인연을 놓아버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오직 물리적 거리만을 남겨둔 두 사람. 서로의 외로운 밤을 달래 줄 체온은 없지만 목소리에 담긴 온기만으로도 그들의 밤은 안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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